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그 본질이 ‘나의 기준은 맞고 너의 기준은 틀리다.' 이며 이것은 '나와 너의 분리'를 뜻합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형제란 예수님의 지체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둔 모든 지체들은 분리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 기준은 맞고 너는 틀리다.' 라고 비판을 하게 되면 나와 너를 분리시키는 것이므로 그것은 내가 예수님과 분리되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심판이 되는 것이죠. 무섭죠?
율법은 곧 말씀입니다. 말씀은 곧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11절 말씀을 정리하면, 우리는 늘 말씀되신 예수님을 비방하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분리된 자, 즉 죽은 자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율법의 재판관’이라고 표현을 하신 것이죠. 즉, 기준이 예수님께 있지 않고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과 분리된 것’ 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인들의 언어 사전을 살펴보면, 죄의 정의는 ‘과녁에서 벗어난 것’ 이라고 적혀 있죠. 당연히 과녁은 하나님(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은 바로 예수님으로 부터 분리된 나의 옛 자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에게 하신 말씀이죠. 즉, 선악의 기준을 스스로 판단하는 나의 옛자아에게 그 기준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12절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정말 초점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서신서가 전부 그렇죠. 오늘 말씀을 매우 단순하게 정리하면,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는 것인데 그것을 인본주의적 논리로 단순하게 생각을 하면 ‘형제를 기분 나쁘게 하지 말라는 것인가?’ ‘뒤담화를 하는 비인격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인가?’ ‘나만 잘났다고 뽐 내지 말라는 것인가?’ 등등의 ‘행위’로만 해석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의 본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이 말씀은 수 많은 모순을 드러냅니다. 비판을 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을 가장 많이 비판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말씀을 어긴 것이 되죠.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말씀(율법)을 다 이루신 분입니다. 여기로 보나 저기로 보나 전부 다 모순 덩어리입니다. 이렇게 모순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시각이 잘못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11절과 12절을 인본주의 시각에서 보면 정확하게 ‘비판하지 말라’라는 '행위지적'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뭐???’ 라는 것까지 고민하면 그 때부터는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이 11, 12절을 복음의 안경을 쓰고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싶은 것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지만 인본주의 종교에 묶여 있는 자들은 오직 '비판하지 않는 착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에서 끝나죠. )
오늘의 말씀은 12절 마지막에 ‘너는 누구이기에’라는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서신서는 매우 매우 어렵습니다. 그냥 읽는 수준으로는 서신서는 절대 복음에 한 발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늘 복음에 눈을 뜰 수 있도록 기도하세요.
‘너는 누군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 이 말씀의 핵심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과 분리된 기준을 가진 너는 누군가?’입니다. 즉, ‘선악과를 먹고 선악의 기준을 스스로 내리는 자로 바뀌어서 그 기준으로 형제를 비판(판단)하는 너는 과연 누군가?’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본질적 질문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파헤쳐 들어가면 오늘 말씀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한번 해 보죠.
‘하나님과 기준이 분리되어 스스로 기준을 가진 너는 누군가?’에서 한 단계 내려가면, ‘너는 말씀되신 예수님과 분리되어 그 분을 비판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고 죽인 너는 누군가?’로 모아집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내려가면, ‘너가 해석(판단)한 율법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너는 누구인가’로 모아집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인본주의 형식으로도 이해 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그 분의 지체인 ‘형제’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서 ‘형제를 비판하는 자인 너는 누구인가?’ 라는 말씀까지 이어진 것이죠.
어렵죠? 복음의 눈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는 이 말씀에서 절대 복음을 묵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일 묵상할 것을 조금 댕겨 오면, 하나님께서는 ‘너는 누구냐?’에 대한 답을 14절 ‘너희 생명은 안개니라’라고 결론 내시죠. 즉, ‘나’는 ‘nothing(아무것도아님=티끌=흙)이라는 것입니다. 어렵지만 재미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