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는 말씀은 본질이 똑 같습니다. 즉, ‘나는 너와 다르다. 너는 틀리고 나는 맞다. 그래서 너를 비판하고 원망한다.’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핵심은 ‘서로 분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형제의 실체도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종합하면 ‘예수님과 분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심판을 면한다는 말입니다.’
구약의 출애굽 당시 애굽의 마지막 10번째 심판이 ‘장자의 죽음’이죠. 장자란 가족의 대표를 말하기 때문에 ‘장자의 죽음’은 ‘인간 전부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바로 어린양의 피 안에 들어 와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묻은 문 밖에 분리되어 있던 자들은 다 죽은 것이죠. 이것을 심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분에서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신다(구원주는 문 안에 계신다.)’라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0절의 ‘선지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기다리며 인내하고 오래 참은 것처럼 우리도 오래 참으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이 말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찾아서 인내하며 참으시면서 이끌고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늘 말씀드렸듯이 복음은 '한몸원리'를 이해할 수 있어야 바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욥’은 욥기1장에서 부터 ‘의로운 자’라고 결정되어 나온 자입니다. 이 말은 욥은 예수님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된 표지판이라는 뜻입니다. 즉, 욥도 선지자 들 처럼 예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죠. 그런데 욥은 욥기 내내 하나님을 무척 많이 원망합니다. 이 때의 욥은 바로 ‘나’입니다. 그래서 욥기 속의 욥은 ‘나’를 품은 예수님을 그려낸 인물이죠. 즉,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인생을 원망한 ‘죄인 욥’을 ‘의인 욥’이 품에 안고 욥기의 마지막까지 굳건하게 인도하여 결국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욥기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과 내가 한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절대 해석이 안되는 책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알게 되었다. 혹은 복음의 눈을 떴다라는 것은 바로 이것을 알게 된 것을 뜻합니다.
즉, 우리가 오래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오래 참고 인내하시면서 우리를 품고 계신 것이죠. 그래서 이 구절 마지막이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늘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래 참아라 ~~ 주는 자비하고 긍휼하시니까~~’라는 식으로 해석하면 모순이 됩니다. 이 말이 인본주의 식으로 논리적인 구절이 되려면 ‘너희가 오래 참지 못해도 주님은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니까 용서하신다.’가 되어야 맞죠. 그런데 다시 반복하면, 인본주의 종교인들은 이 말씀을 ‘너희는 진짜~~ 오래 참아야한다.~ 주님은 자비로우시니까~~’는 이상한 구절로 만들고 있죠. 그런데 이 오래참음의 주체가 내가 아닌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주님의 '자비와 긍휼'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것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조금 복잡하므로 다시 한번 정리를 하죠. 신앙생활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 인내를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 욥이죠. 그래서 욥처럼 끝까지 인내하면 주의 긍휼과 자비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오늘의 말씀 겉에 흐르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절대 그렇게 인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실제로 욥도 하나님을 무척 원망하죠. 인내하지 못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욥1장에서 하나님께서 '욥은 의롭다.'라고 선언하셨죠. 즉, '욥을 예수님의 표지판으로 이해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그 분의 품에 넣으시고 고난과 오래참음으로 인내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얻어 천국에 가게 된다는 것이 오늘의 말씀 속에 흐르는 해석입니다. 어때요? 너무 민망할 정도의 행운(?)이죠? 그래서 복음(복된 소식)입니다. ( 그런데 신기하게도 인간은 이것을 절대 안 믿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악을 분별해서 자기가 쌓은 의(자기 의)만 바라보며 사는 존재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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