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17,18절을 가지고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군~~ 우리도 엘리야처럼 기도하면 하늘에서 비를 오게도 하고 멎게도 하는 기적의 기도를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열심히 새벽마다 기적을 달라고 기도하는 자들이 있죠. 이런 방향성에서 빨리 도망가십시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는 말의 본질은 엘리야는 예수님의 손가락이라는 말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의 속성 중에 ‘인자 예수님’을 특정한 것입니다. 인자 예수님의 뜻은 ‘나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뜻이라고 했죠. 내가 따로 있고 예수님이 따로 있고 그런 예수님을 내가 믿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없어지고 오직 예수님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로 오셨다.’를 표현한 것이 바로 ‘인자 예수님’입니다. (내가 져야할 십자가를 예수님이 지신 것이죠.)
그래서 오늘 말씀은, 엘리야도 나와 같은 죄인이지만 그도 예수님의 지체였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3년 6개월을 굳이 말씀 안에 넣어서 예수님의 공생애의 3년 6개월과 맞춘 것이죠.
성경에서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은혜를 말합니다. 그리고 ‘삼년 육개월’은 바로 ‘인생’을 말합니다. 이것을 요한 계시록에서는 ‘한때(1년) 두때(2년) 반때(육개월)’라고 표현이 되어 있기도 하죠.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말하기도 하죠. 이것을 종합하면 ‘인자 예수님’의 고난의 공생애인 3년 반은 바로 요한 계시록에서 말하는 환난을 겪는 선택받은 인간의 인생 전부를 뜻하는 것입니다. ( 인자 예수님의 공생애 = 선택받은 자의 인생 전부를 대신함 ) 예수님의 공생애 3년 6개월의 시간은 그 분의 방향에서 보면 '하나님이 버리신 시간'이기 때문에 엘리야의 '비(은혜)가 내리지 않은 시간'과 같은 의미죠. (참고로, 계시록에서 짐승에게 허락한 42개월과 1260일은 모두 3년6개월이죠. 같은 말입니다. 모두 천국의 숫자 7년의 반을 뜻합니다. 즉, 천국으로 가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 절반에 해당하는 '고난(인생)'을 뜻하죠. )
"마27:46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래서 16, 17절을 다시 정리해 보면, 십자가가 완성되기 전의 예수님의 공생애 시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버려진) 상태이지만 예수님의 간구와 기도로 십자가 사건이 완성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비가 오듯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비로서 이 땅에서 선택받은 자가 구원을 맺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십자가 전이 7년의 반에 해당하는 고난을 뜻하고 십자가 후가 7년의 나머지 반에 해당하여 완전한 7년, 즉 천국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19절을 보죠.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이라고 되어 있죠. 진리는 예수님입니다.( 진리는 어떤 논리와 합리성을 갖춘 글이나 원칙 등이 아닙니다. 이같은 것이 바로 인본주의 누룩에 오염된 인간의 해석입니다. 진리 자체가 예수님입니다. 정확하게는 진리는 예수님의 정체성입니다. 즉,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시죠. )
그래서 이 말씀은 ‘인본주의에 미혹되어 예수님과 분리된 자를 누가 다시 예수님에게 돌아서게 하면’이라는 뜻이며 이것은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20절에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다' 라고 나온 것입니다.
즉,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라는 말이죠. 이것이 야고보서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구원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결론으로 사용하신 것이죠.
그런데 인간은 이 말씀 조차 ‘그래~~~ 내가 열심히 전도하고 그 자를 위해 새벽마다 기도해서 그를 미혹된 길에서 돌아오게 하여 구원을 받게 해야지~~ 그리고 항상 그런 사명을 갖고 살아야지~~’로 해석을 하죠. 그런데 하나님은 신기하게도 이런 인본주의 종교의 시스템을 활용하십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말씀을 가지고 선택된 자들은 골라내시는 작업을 하시죠.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보면 ‘천국은 그물로 물고기를 모으는 작업과 그 다음 작업인 좋은 물고기와 좋지 아니한 물고기를 나누는 것. 두 개의 작업으로 설명을 하시죠.
오늘까지 야고보서를 묵상했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야고보서는 ‘행위’를 강조하는 말씀으로 많이 알고 읽었던 성경이죠. 그런데 이렇게 야고보서를 묵상해보니 그 행위는 전부 내가 아닌 예수님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것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성령님으로부터 알게 되어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는 길이 나의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 방향성을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 끝으로 복습삼아 야고보서의 대표 구절을 이중 괄호에 넣어서 짧게 재 방송 묵상을 올릴께요 ))
"약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 재방송 묵상 : 이 말씀의 본질은 우리는 모두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을 끝까지 행하여 좁은 길(십자가)을 걸어가신 분은 예수님 한 분 뿐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스스로 말씀대로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모두 스스로 그 자신을 속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오직 예수님만 소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바로 야고보서의 목적입니다. ))
끝
그 동안 야고보서를 묵상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짝 짝 짝) 내일 부터는 사도행전을 묵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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