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민30: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
민수기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께 맹세한 것은 다 지키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본질은 바로 ‘인간은 절대 자신이 한 맹세를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필요성을 알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죠. 그런데 이 말씀의 더 핵심적 본질은 바로 이 구절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와 그 분의 신부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모든 율법을 다 완성하시겠다는 맹세를 다 지켜내셨다는 것입니다.
즉, 맹세는 오직 ‘예수님’만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초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께 한 맹세를 지키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죠. 유치한 예를 들면, ‘작정헌금’이 바로 그런 류의 신앙생활의 일부죠.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의도와 완전히 빗나간 길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 바보같은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는 맹세에 관해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라고 하시죠. 그런데 또 다시 인간은 이 말씀을 들으면 ‘아~~ 이제부터 나는 맹세를 하지 않으면 되는구나~~’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즉, 이것도 ‘행위를 하지 않는 행위’로, 즉 ‘행위’로 풀어버리죠.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성경에 기록한 이유는 ‘구약의 맹세 율법이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려주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즉, 구약에서는 맹세를 했다면 꼭 지키라고 하셨는데 오늘 말씀에서는 절대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면 이 두 구절을 모두 만족시키는 본질은 무엇일까?를 묵상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반복하면, 인간은 맹세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며 오직 맹세는 예수님께서 지켜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유치한 예를 들면, 복음에 눈을 뜬 자들은 ‘작정헌금’을 하다가 포기해도 상관이 없게 되고 복음에 눈을 뜨지 못한 자들은 자신이 굶는 한이 있어도 작정헌금이라는 맹세를 지켜내죠. (( 이 부분은 제가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변수를 생략하고 가져다 쓴 에피소드입니다. -- 이 에피소드를 또 다시 ‘행위’로만 받아서 ‘그래~~ 난 작정헌금을 포기해야 돼’의 방향성을 갖게 되면 그것도 ‘꽝’입니다. --- 그래서 이 묵상은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 목표이지 맹인들에게 ‘빨간색’을 얼마나 잘 설명하는지가 목표가 아닙니다. -- 즉, 복음의 눈을 뜨지 못한 채 이 묵상을 듣고 있으면 '그래서,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라는 결론에만 도달하죠. ))
그런데 ‘맹세하지 말지니’ 다음에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나오죠. 조금 이상하죠? 구약은 분명 ‘하나님께 서원(맹세)’하는 것인데 여기는 왜 이렇게 나올까요? 여기는 조금 더 복잡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께 했다고 하는 맹세는 사실 하나님께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께 했다고 한 맹세는 사실 하나님께 한 것이 아니므로 그 어떤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는 표현이기도 하죠.
이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렇다는 것은 그렇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씀으로 이어지죠.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복음에 눈을 뜬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확실히 구분(심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복음에 있는 자들은 이 말이 너무 너무 쉽습니다. 이 말씀은 ‘이것은 복음에 대한 것이구나. 이것은 복음에 대한 것이 아니구나(즉,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것이구나)’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죠.
또 다시 유치한 예를 들어보면, 교회에서 작정헌금을 시킬 때 이것을 보면서 ‘이것은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구나. 혹은 이것은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구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에 눈을 뜨지 못한 자들은 ’내가 얼마의 금액을 맹세하면 1년 동안 잘 지킬 수 있을까?‘라는 행위의 책임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이 차이가 보이세요?
문제는 이렇게 행위의 책임에 묶여 있게 되면 예수님의 은혜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 마지막이 바로 ’정죄 받음을 면하라‘로 끝나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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