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4장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라는 말은 어제 말씀드린대로 인본주의와의 분리를 뜻합니다.이렇게 인본주의와의 분리가 신앙의 출발이죠. 그러나 이것은 인본주의와 금을 긋고 해탈하도록 노력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인본주의와 분리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인식하는 눈을 갖게 되어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는 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것이죠.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초반 에피소드를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하란에서 아브라함에게 ‘소명(여기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거라)’합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그 전에 살던 곳인 갈대아에서 소명을 받은 것처럼 나오죠. 실제로 갈대아 우르가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살던 곳이 맞습니다. 그곳에서 그의 아버지 데라와 함께 세 형제인 아브라함, 나홀, 하란이 살았죠. 그런데 갑자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모든 가족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떠납니다. 그런데 중간에 하란이라는 장소에서 머물고 그곳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죠.
많은 신학자들이 아브라함이 소명을 받은 장소가 갈대아 우르인가? 하란인가? 에 대하여 설왕설래하죠. 심지어 그의 아버지 데라가 소명을 먼저 받았고 아브라함이 그 소명을 이었다는 말도 있죠. 그런데 이렇게 복잡하게 성경에 기록한 이유가 복음으로 보면 정확하게 설명이 됩니다. 그것을 인본주의 논리로 풀다보니 헤깔리는 것 뿐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모순되게 ‘소명’의 장소와 시간이 헤깔리게 쓰여진 이유는 바로 ‘인간의 측면에서 소명은 없다‘ 입니다.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분명하게 하란에서 아브라함에게 ’소명‘ 하셨죠. 그런데 우상을 섬기던 그의 아버지가 소명없이 먼저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측면에서 해석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금 어렵죠? 촛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데라가 되었던, 아브라함이 되었던 그 인물에 촛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중요한 것이죠. 그런데 인간의 악한 습성이 아브라함을 주인공을 만들어서 ‘소명’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오직 ‘하나님의 열심’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열심'과 '하나님의 열심' 의 차이를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특히 아브라함이 소명을 받은 하란과 그 형제 하란이 이름이 똑 같죠? 재미있습니다. 형제는 같은 피를 이어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하란’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내 안의 나를 의미합니다. 즉,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나의 옛 자아와 소명을 받아 거듭난 나를 분리시키는 것으로 형제 하란과 아브라함을 분리시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장소로써의 하란에서 소명을 주면서 그곳에서 떠나라고 하시는 말씀이죠. 이제 이 모든 것이 무엇을 가르치려는지 아시겠죠?
5절도 매우 이상합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했는데, 5절을 보면 ‘여기서(가나안)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주신다는 건지 주지 않으시겠다는 건지 애매하죠. 그러나 이 말씀도 복음의 눈으로 보면 완벽하게 설명이 되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가라는 말씀과 그 땅을 주신다는 말씀은 그 땅 자체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복음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곧 예수님이고 예수님과의 관계 맺음은 곧 천국을 의미하죠. 그래서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하는 표지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표지판에 묶여서 진짜 실체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처하면 안되겠죠. 그래서 5절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5절 하반절에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의 후손은 정확하게 ‘예수님’을 뜻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