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완료)

행7:30-37(22.06.28.화)

은혜바라기 2022. 6. 28. 07:53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4의 숫자는 땅의 숫자입니다. 10은 완전수죠. 즉, ‘이 땅에서 그 때가 차매’ 라는 뜻이 바로 ‘사십 년이 차매’입니다. ‘광야’는 선택받은 자들의 인생을 뜻합니다. ‘가시나무’는 고난을 뜻하죠. 불꽃은 성령을 뜻합니다. 이것을 종합하면, 선택받은 자들은 광야같은 인생에서 고난을 반듯이 겪게 되지만 어느 시기가 되면 성령께서 오셔서 복음을 알려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32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는 오직 선택한 자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표지판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만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예수님 안에 선택된 자들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직 선택된 자들의 하나님이라는 해석이 다시 나오게 되죠. 돌고 돌아 복음은 결국 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죠. 

 33절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라고 하시죠. 그 이유가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 그 이유입니다.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이 장소가 거룩하게 된 이유는 바로 하나님과 모세가 ‘관계맺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복음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천국도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관계의 개념이죠. 

 ‘거룩’을 유대인의 사전에서 찾아보면 ‘분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즉, 인본주의와 분리하여 하나님과 관계맺는 것을 거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거~~~ 룩~~~한 행위와 모습으로 살도록 노력해라~~~‘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인본주의와 완벽하게 분리되어 계신 분이므로 너희도 인본주의와 분리되어 나의 진영으로 들어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신을 벗으라고 하셨을까요? 신의 용도는 우리 발이 땅에 직접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간의 노력으로 만든 발명품이죠. 그리고 지금의 장소는 하나님이 계신 장소이므로 거룩한 곳이 되었죠. 즉, ‘신발’은 ‘인본주의’을 뜻합니다. 즉, 원래 본질의 뜻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본주의를 벗으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장소'의 개념을 이용하신 것입니다. 일단 '이 장소'를 거룩한 곳으로 규정하셨고 그 거룩한 장소로 부터 나의 신체(발)를 분리시키는 신발(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를 벗으라는 명령을 내리셨죠. 그래야 '거룩한 장소'가 '나의 신체'와 직접 접촉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1차원적인 설명을 통해 지금 하나님께서는 '거룩'이라는 본질을 설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34-35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목적으로 애굽에 보내신다고 하십니다. 이 때의 모세는 바로 예수님의 표지판입니다. 모세는 24절에서 죄인의 표지판으로 나왔죠. 그리고 33절은 교회의 표지판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34-35절에 가서는 예수님의 표지판으로 나오죠. 모두 ‘한몸원리’ 안에 녹아져 있죠. 즉, 교회의 정체성은 바로 '예수님과 죄인이 한몸이 되어 있는 것' 입니다. 

 36절은 모세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것도 예수님의 사역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백성(교회)를 인도(구원)하여 나오게(분리)하셨죠. 모세가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한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뜻합니다. 조금 단순한 본질에 대하여 질문하죠. 왜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셨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밝히려구요? ‘땡’입니다. 정말 기적을 사용하신 이유가 그것이었다면 지구를 둘로 쪼갠 후에 ‘나를 안 믿으면 더 쪼개 주마~~’ 라는 식의 더 명확한 방법은 얼마든지 있죠. 

 예수님이 기적을 사용하신 이유는 그 기적 자체가 바로 복음의 속성을 설명하시는 방편입니다. 즉, 기적이란 이 세상의 인과율에서 벗어난 현상을 뜻하죠. 복음의 속성이 바로 이것과 같다는 것을 선택받은 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인생’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거기에 묶여서 열심히 살지만 복음을 알게 된 자들은 이 인생은 단지 ‘복음’을 가르쳐 주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천지창조 자체가 결국 멸망을 전제로 한 한시적인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알죠. 이것이 복음의 가장 큰 핵심 속성입니다. 이것을 이 세상 인과율로는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죠. 즉, 복음은 ‘기적’과 같은 위치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마지막 37절은 번역이 조금 어렵게 돼서 제가 조금 쉽게 풀어 드립니다 37절 “모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고 했다.”입니다. 이렇게 풀어보니 이 선지자가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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