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완료)

행7:54-56(22.07.01.금)

은혜바라기 2022. 7. 1. 07:46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4절처럼 우리는 복음을 듣게 되면 마음에 찔려 이를 갈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성령께서 개입하시면 우리는 복음을 알아 듣게 됩니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다윗의 밧세바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다윗은 간음, 살인, 거짓말, 탐욕, 도둑질 다섯 가지 십계명을 전부 어겼죠. 남의 아내를 탐내어 도둑질 하여 간음하고 그 남편에게 거짓말하고 그를 살인하죠.   

 그런데 나단 선지자가 와서 어떤 비유를 이야기하니까 그 비유를 듣고 회개를 하게 됩니다. 이 다윗의 밧세바 사건은 우리가 복음을 어떻게 알아듣게 되는지를 가르치려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죄인의 무대에 올려 놓으신 것입니다. 복음은 성령(나단의 역할)의 개입이 없으면 절대 알아듣지 못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죠. 혹시 제 묵상을 읽으시면서 복음이 이해가 되고 볼 수 있다면 성령께서 함께 하고 계신다는 증거(믿음)입니다. 그 증거(믿음)을 통해 더 풍성한 믿음으로 발 돋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늘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롬1:17절 말씀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롬1:17상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55절에서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라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 표현이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인본주의 종교의 특성 중 ‘신비주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본주의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특성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신비주의라면 인본주의와 반대가 아닌가?’ 라고 여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본주의의 반대는 신본주의,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 중심(기준)’을 말합니다. 인본주의라는 것은 인간기준(‘나’ 기준 혹은 확장된 나(공동체) 기준)을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난 ‘이상한 일’을 해석할 수가 없게 되면 그것을 ‘신비함(기적)’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이 카테고리를 신비주의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비주의’는 율법주의, 영지주의와 함께 인본주의의 3대 주요 이단사상입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종교에서는 이렇게 스데반이 예수님을 직접 보는 장면을 ‘신비함’으로 해석을 하고 ‘스데반은 죽을 때 안 아프고 좋겠다. 나도 그렇게 눈으로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다~~’의 방향성을 갖게 되죠. 그래서 이곳 저곳에서 예수님을 보았다고 외치는 자들이 생겨 나기도 합니다. (다 가짜죠.)

 “마24: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말라 ”

 그렇다면 이 때 스데반은 예수님을 정말 보았을까요? 맞습니다. 스데반은 그 날 예수님을 진짜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사도행전이라는 책의 방향성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모두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성령께서 특별한 인물들을 활용해서 만들어가는 책입니다. 성령께서 지금 스데반에게 직접 예수님을 보여주신 이유는 바로 복음을 직접 설명하고 있는 중이라는 방향성으로 해석을 하셔야 합니다. 

 성경이 완성된 이후로는 절대 이러한 현상은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성경이 완성이 안된 시기이므로 이런 도구들을 사용하셔서 성경을 완성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도 이런 현상으로 복음을 설명하신 것이라면 그것은 성경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모순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천지만물을 통해 복음을 설명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로 인해 인간은 오직 인본주의, 즉 인간 중심으로 모든 천지만물을 해석을 하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참고서를 인간에게 주셨죠. 이것을 특별 계시라고 합니다. 이 특별 계시를 '성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복음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계시죠. 온통 성경은 복음의 이야기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주인공은 오직 예수님이시죠. 그런데 복음의 속성을 전부, 자세히 설명하다 보니 간혹 '형광팬'을 사용하셔서 우리의 이해를 도우셨죠. 그게 바로 성경에서만 사용하신 '기적과 이적'입니다. 그러나 이 형광팬의 색깔에 주목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그 형광팬이 줄을 그은 복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눈으로 보는 이 장면은 우리가 복음을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를 눈으로 보듯 그 분의 진정한 정체성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참 복음을 이해하는 것은 눈으로 예수님을 목격하는 것과 같이 뚜렷하게 그 분의 정체성을 인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55절은 이것을 표현한 것이죠. 

 그래서 55절은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라고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은 성령께서 알려 주시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있는 예수님을 본다고 표현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다고 표현이 되어 있죠? 바로 천국의 진정한 정체는 ‘하나님과의 오른(올바른) 편(관계)’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P.S 매주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사명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고 그냥 살아가시다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눈에 들어오면 이 묵상을 권해 주세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파해 주세요.(그러나 이 뜻은 '아무 때나 무조건‘ 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도 행위로 파악하여 책임감에 어깨가 짖 눌리신 분들이 많죠. 이 말은 "전도는 인본주의를 고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

 전도는 설득이 아닙니다.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들의 모습은 매우 동일합니다. 길을 잃어 버려서 마음이 가난해져서 애통한 상태죠. 즉,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고 애통한 상태에 놓여 있죠.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복된 모습'입니다. 복음(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 막혀 있는 곳에서 길을 잃어 버립니다. 

 주위에 이런 분들이 눈에 들어 온다면 이 묵상을 권해 주세요. 반대로 마음이 부유한 자들을 설득하려 하지 마세요. 마음이 부유한 자들이란 사회에서, 교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쌓아가는 자들입니다.(물론 그들 중에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 가난함을 인식하는 자들도 있겠죠) 그들에게 그 가치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의 가치만을 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예수님의 가치가 충돌하죠. 그리고 다시 한번 예수님을 살인(부인)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여러분을 박해(오해)하죠. 이것은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살벌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관계가 부모와 자식, 형제와 형제 즉, 가족입니다. 사랑하기에 때릴 수 밖에 없는 관계라고나 할까요!!

 오직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글을 권해주세요.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 그 날을 생각해 보세요^^

 주말과 공휴일은 묵상이 없습니다. 친구, 가족과 재미있게 잘 보내시고 다니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도록 기도하세요. 재미있게도 눈을 뜬 자들은 어떠한 이단목사의 설교를 통해서도 복음으로 가공해서 해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들의 행위는 본 받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은 잘 지켜라 ” 어떠한 기독교 이단이라도 성경말씀을 전파하는 통로로 하나님은 사용합니다. 이 말은 어떠한 정통교회 목사라도 이단적 발언은 항상 존재한다는 말이죠. (저의 묵상을 포함해서 모든 가리키는 손가락들은 진리가 아닙니다. 오직 말씀이 가리키는 목표인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 홈페이지 처음에 보면, 지난 묵상과 특별 묵상이 포스팅되어 있습니다. 시간 나실 때 마다 계속 보시면서 묵상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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