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진행중)

마가복음2:1-5(25.01.09.목)

은혜바라기 2025. 1. 9. 08:02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오늘 본문도 전부 복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복음의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나의 기준과 행위로 읽으시면 안 됩니다. 물론 어느 누구나 성경을 읽으면 나에게 주시는 교훈으로 읽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복음으로 인도하는 첫 계단일 뿐입니다. 목적지가 아닙니다. 이후 목적은 나는 성경 말씀을 단 한 글자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모든 성경은 나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키시고 완성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부인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남는 것,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남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중풍병자’도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자의 옛 자아를 가리킵니다. 중풍병자는 살아 있지만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마비되어 살아가는 사람이죠. 우리는 원래 영적으로 살아 있는 존재로 하나님과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지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배신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인간 본위로 살겠다는 인본주의 삶을 선택했죠. 이런 인간의 상태가 영적으로 보면 ‘중풍병자’의 삶과 같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 중풍병자가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스스로 움직여서 예수님께 온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5절을 보면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신 것이 아니라 중풍병자를 옮긴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하시죠. 오늘 말씀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잘 따라오세요.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은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여기 나온 4라는 숫자는 동서남북(4)을 가리키는 이 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천지만물이 ‘4’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실제 모든 천지만물을 섭리하시죠. 특히 성령께서는 모든 선택받은 자들을 인생(4) 내내 견인하십니다. 

 고로 오늘 장면은 이 땅(4)에서 인본주의에 묶여 중풍병자처럼 살고 있는 선택받은 자들을 성령께서 견인하여 예수님과 결국 만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선언, 즉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하셨죠. 이것은 믿음의 본질적 출처가 성령님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중간에 보면,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라는 의미는 선택받은 자들이 예수님께가려고 해도 인본주의 장애물이 항상 막아서고 있는 가운데 성령께서 아무리 강력한 인본주의 장애물이 있더라도 선택받은 자들을 견인하여 예수님께 반드시 도달하도록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믿음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믿음을 굳건히 하십시오~~’라고 설교하는 것은 복음적으로 보면 상당히 바보 같은 짓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핸드폰은 잃어버렸을 때 옆 사람이 ‘네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벨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봐~~’ 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일면 맞는 소리 같지만 바보같은 소리일 뿐이죠.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견인하는 방식은 수 없이 많고 ‘신비’라는 영역에 감추어져 있지만 일부는 우리에게 그 과정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을 통해 복음을 설명해 주시는 것이죠. 선택받은 자들은 성경말씀과 실제 생활에서 늘 모순되는 충격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 이유를 때에 따라 설명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선택받은 자들은 복음의 본질을 조금씩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선택받은 자들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하나씩 하나씩 알게 되죠. 

 이렇게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에 ‘믿음’이 발동합니다만 그 믿음은 나의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견인에 의해 생긴 증상일 뿐입니다. 즉, 형광등에 빛이 들어오는 이유는 그 스위치를 성령께서 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목사들이 단절된 스위치를 가진 형광등에게 스스로 빛을 내라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평생 몸부림을 쳐도 절대 참 믿음이라는 형광등에 빛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종교를 믿음으로 착각하는 것이죠. 사실 이 차이는 스스로 느낍니다. 내가 킨 가짜 빛인가? 성령께서 키신 진짜 빛인가? 스스로 킬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은 모두 가짜 빛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믿음이라는 감정을 일으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복음이 이해되면서 나와 상관없이 불가항력적이 은혜로 믿음의 형광등이 켜집니다. 흡사 내 부모님이 진짜  나의 부모님이라는 사실을 믿기위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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