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라. 그래야 하나님도 용서한다.’의 의미가 ‘주고받기’식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어제 주기도문의 묵상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은 절대 타인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 존재가 안되기 때문에 오직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받아주시는 분은 예수님 한 분 뿐이라는 것'을 알고 해석을 해야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여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조금 의역해서 풀어보면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죄가 용서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는 것이죠.
그러나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이라는 뜻은 율법의 시대를 뜻합니다. 즉, 복음이 아닌 율법, 즉 ‘죄를 지으면 죽는다’는 율법의 시대에서는 하나님께서 절대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고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공의)을 뜻합니다.
‘금식’에 대한 것도 가장 많은 오해가 있는 단어죠. 대부분 ‘죽기 살기로 금식해서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얻어 내자’로 생각하죠. 더 심각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금식하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기도 하죠. 자신의 신앙심을 돋보이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혹은 금식하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숨기면서 ‘난 잘하고 있어’라고 ‘자기만족’을 하죠. 성경은 이런 모든 것을 외식하는 자로 규정하죠. 아무튼 결론은 인간의 모든 금식은 어떤 형태이든 전부 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금식’에 대한 본질을 알지 못하는 ‘눈먼 자’이기 때문이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유일하게 금식하실 수 있는 분은 바로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금식이란 ‘밥먹지 않고 굶기’가 아닙니다. 금식이란 ‘인본주의와의 완벽한 단절’을 뜻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수준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가능하죠. 우리가 밥 안 먹고 굶고 기도하는 것은 정말 ‘바리새인’과 같은 행위일 뿐입니다. 물론 프로그램으로 잠깐 동안 진행해 볼 수는 있죠. 그러나 그것을 신앙과 믿음으로 연결하지 마세요. 그렇게 연결하는 순간 그것을 바로 ‘누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통은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라는 말씀을 금식하는 티를 내지 말라로 받아 들이죠.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의 복음 사역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인본주의와 완벽한 단절(금식)을 통하여 사역을 진행하시죠. 그런 복음사역을 하시면서 교회의 머리(얼굴)되신 예수님의 기름 받이심(왕과 제사장의 지위를 유지함)과 씻김(정결함을 유지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되심으로 인해 예수님의 지체인 교회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가름받으심과 씻김 즉, 왕같은 제사장의 위치와 정결함을 같이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즉 나는 못하고, 예수님이 다 이루시고, 이 두가지를 알게 된 나도 그것을 이룬 것으로 인정받게 되는 복음을 뜻합니다.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 생각하세요.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금식(인본주의와의 단절)하면서 이루시는 예수님이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 바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풀어보면 ‘예수님의 제물되심’을 뜻합니다. 구약에서 ‘흠 없는 어린 양’에서 흠이 없다는 것이 바로 인본주의의 더러움이 없는, 즉 인본주의(죄)와 완벽하게 분리 된 예수님(제물)이 되셔야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받으시게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복음의 사역을 이렇게 은밀하게 진행해야하는 이유에 대하여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부분이 있죠. 그 이유는 바로 선택된 자들만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13:10-11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라고 하셨죠.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선택받지 않은 자들이 복음을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하기 까지 하실 정도로 경계하셨죠.
“마태복음13:15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 이 부분은 창세기 초반에도 나오죠. 선악과를 먹고 다시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먹을까 하여 하나님이 생명나무에 오지 못하도록 그룹과 두루 도는 불칼로 그 길을 지키게 하시죠. 모두 같은 말씀입니다. 복음은 오직 선택된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사랑이고 사랑의 기초 속성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