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완료)

마10:32-33(21.10.20.수)

은혜바라기 2021. 10. 20. 08:55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오늘의 말씀은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법으로 등장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give and take’방식 즉, ‘주고 받기’식 신앙으로 알고 있죠. 우리가 하나님께 지극정성을 보이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좋은 것을 준다는 신앙이죠. 그러나 이것은 완벽하게 이단입니다. 인간이 만든 종교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성입니다. 기독교에도 이 누룩이 이미 많이 들어와 있죠. 그래서 그들은 오늘 말씀을 ‘타인 앞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용기 있게 주장하자 ’ 라고 받아 들이죠. 

 그러나 이 말씀에서 나온 ‘사람’의 진정한 정체는 바로 ‘나의 옛자아’입니다. 즉, 이 말씀은 ‘나의 옛자아를 부인하고 예수님만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조금 직접적으로 표현한 말씀이 있죠.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사람’이라고 하셔서 헤깔리게 만드실까요? 

 이런 표현법은 예수님의 지체들만 해석할 수 있게 해 놓은 장치입니다. 그 외 유기된 자들은 전부 인본주의 종교에 묶일 수 밖에 없게 해 놓으셨죠. 예수님께서도 두려워한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선택받지 못한 유기된 자가 복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즉, 선택받지 못한 자가 복음을 이해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하죠.  말씀을 한 구절 보죠., 

 “마13:15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

 예수님은 이 정도로 철저하게 선택받은 자와 유기된 자를 구분하는 사명을 받으신 분이죠. 그래서 그 분이 심판의 주관자입니다. 그렇다면 선택받은 자의 눈으로 오늘 말씀에 나오는 ‘사람’이 어떻게 ‘너의 옛자아’인지를 풀어보아야겠죠. 

 복음의 눈으로 성경을 보면 사실 ‘타인’이란 존재는 없습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과 나의 관계만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본주의 종교로 풀기 때문에 나와 타인의 관계로 풀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타인은 없습니다. 이것은 철학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왜 모든 자연 만물을 암,수 짝으로 만드셨는데 유독 인간만 ‘아담’ 단독으로 창조하셨을까요? 하와는 나중에 아담의 속에서 꺼낸 아담입니다. 즉, 아담에게서 나와서 죄를 짓게 한 또 다른 아담이죠. 이렇게 사람만 일부러 두 단계를 거쳐서 창조하신 이유를 알아야합니다.  타인은 바로 ‘나’라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시스템으로 복음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셨을까요? 

 천지창조는 사람에게 복음을 설명하려고 만든 한시적인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이 복음을 알아듣는 첫 번째 관문이 바로 ‘자신의 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고백’의 차원이 아닙니다. 또한 단순한 ‘반성’의 차원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을 때 까지도 '죄'에 대한 정의조차 못하고 죽습니다.  ‘나의 전적타락, 나의 전적 무가치함’를 완벽하게 자각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불가능하기 때문에 심지어 이것을 ‘거듭남 즉, 다시 태어남’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람은 절대 자기 자신을 ‘전적타락의 존재, 전적 무가치함의 존재’로 여기지 않죠. 자의식이 강한 인간은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타인(나의 또 다른 객체)를 보면서 ‘아~ 사람이 저렇게 악하구나~~’라고 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즉, 타인을 거울의 역할로 만드신 것이죠. 타인의 악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악함을 평가할 수 있는 마음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뜻이죠. 즉, 내 마음 속에 그 악함과 똑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우주에서 다 같이 살아가지만 영적으로는, 각자가 다 자기만의 하나의 우주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이 글을 읽고 계신 선택받은 자가 계신다면 오직 그 분 한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자신이 죽게 되면 자신이 속한 우주는 완벽하게 종말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선택받은 사람의 영혼 하나는 그가 속한 전 우주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말씀을 마태,마가,누가 복음에서 3번이나 반복하셨죠. 

 

 "막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복음의 안경을 쓰고 성경을 보면서 고민하시고 인생을 살면서 고민하세요. 이렇게 복음의 안경을 쓰고 하는 '고민'을 '거룩한 고민'이라고 하며 이것이 바로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쉬지말고 기도하셔야합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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