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완료)

행2:14-20(22.05.16.월)

은혜바라기 2022. 5. 16. 08:58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오늘의 묵상은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매우 강력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강림을 기준으로 그 직전의 사건인 베드로의 ‘맛디아 뽑기 사건’이 성령받지 않은 성도의 어리석음에 대한 가르침이었다면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성령받은 자의 복음에 대한 각성을 뜻합니다. 

 다시 한 번 사도행전에 대한 방향성을 점검해 보고 시작합니다. 사도행전은 절대 ‘사도는 옳다’에서 출발하시면 안됩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입니다. 성령께서 이 사도들을 지금 어떤 용도로 사용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 이중괄호를 참고하세요 ))

 (( 사도행전에서 사도가 갑자기 기적를 보이는 경우는 사도가 복음에 대하여 어긋날 수 있거나 도저히 가르침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기적이라는 직접적 관여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복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즉, 사도가 기적을 보이면 '와~ 대단하다~' 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도가 이 부분을 복음으로 설명할 능력이 없었구나. 그래서 성령께서 직접 관여하시는 구나~' 의 방향성으로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 늘 이런 시각을 유지해야 합니다. 인물에 집중하시면 안됩니다. 사탄은 늘 우리에게 성경의 인물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영웅(우상)을 만들어 추앙하게 하죠. (위대한 역사 속 신앙인을 추앙하게 하죠. 교회의 목사를 추앙하게 하죠.) 그러나 우리는 복음(예수님)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

 고로 이 베드로의 설교도 100% 의지할 만한 설교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늘 그렇게 의심해야 합니다. 즉, 베드로의 설교, 행동은 의심하되 이 설교를 성경에 기재하신 성령님의 의도를 100% 믿고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설교는 성령강림 직후 성경에 기재하신 내용이죠. 즉, 그 속에 매우 중요한 성령님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케치하면서 읽으셔야 합니다. 

 ‘때가 제 삼시니’라고 하죠. 유대인의 삼시는 오전 9시입니다. 성경시간 계산을 헤깔려 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렇게 괄호의 방법으로 숙지하세요. ( 빛이 생기는 순간이 복음에서는 ‘0시(출발)’입니다. 그래서 현대 시간의 아침 6시, 즉 해뜨는 시간이 바로 ‘0시’입니다. 그래서 삼시는 해뜨는 시간 6시 + 3시간 후 = 오전 9시가 되는 것이죠. 즉, 아침 6시가 출발이므로 항상 6을 더하면 됩니다. 쉽죠? )

 그래서 이 말은 베드로가 ‘이 오전에 누가 술을 먹겠니?’라고 빈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차용해서 성령께서는 ‘삼시’에서 3이라는 숫자를 차용해서 ‘이제는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시간이란다.’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3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1은 유일신 하나님(성부)의 숫자죠. 그것을 증거의 숫자2(성자,성령)를 더한 숫자이기도 하죠. 즉 '하나님이 하나님을 증거함'이라는 뜻의 3이 됩니다. (이 뜻이 바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의 말씀이며 영어로는 ' i am who i am '입니다. 그리고 이 글이 바로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조금 정리가 되시죠?)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고 베드로가 변명을 하죠. 그러나 성령께서 이 말씀을 성경에 기록한 이유는 바로 이 방언 에피소드를 인본주의로 해석하며 안 되고 오직 복음의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성경에 기재한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방언의 현상을 변명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이 꼼짝 못하는 구약의 예언 중 요엘의 예언을 갖져다가 변명을 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이 베드로의 변명으로 사용된 요엘의 예언을 통해 우리에게 복음을 설명하고 있죠. 한번 알아 보죠.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라고 합니다. 말세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부터의 모든 시간을 말합니다. 즉, 지금도 말세입니다. 그리고 ‘내 영’이란 성령님을 말하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이라는 뜻은 ‘인간 전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선택된 자들 전부를 가리키죠. 그런데 왜 ‘모든’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그 이유는 선택된 자들 중에 단 한사람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의미의 ‘모든’입니다. 

 이렇게 선택된 자들을 성령께서 찾으셔서 복음을 알려 주시게 되면 그 자는 (술 취함의 속성과 같은) 인본주의에서 분리되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성경에 기재가 되어 있습니다. 자녀, 젊은이, 늙은이, 남종, 여종으로 표현된 것은 방금 말한 ‘모든 육체’를 더 강조한 것입니다. 즉, 특별한 자들(목사, 선지자, 유대인과 같은)만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초점입니다. 

 교회에서 ‘누가 무슨 은사(방언, 신유, 예언 등등)을 받았다.’라는 말은 전부 다 거짓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후하여, 즉 신약과 구약에서 십자가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기적이라는 도구를 일부 사용해서 성경을 완성하셨죠.(이 말은 성경 기록에 더 직접 관여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완성된 이후 모든 복음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전달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는 분은 성령님이시죠. 그래서 그 외에 것은 반대로 성경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는 꼴이 됩니다.

 성경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완벽하죠. 그런데 성령께서 그것을 오직 선택된 자들에게만 알려주시기 때문에 그것에서 유기된 자들은 '스스로 기적과 은사'를 만들어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 왜요? 답답하니까요. 그렇게 해서라도 스스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죠. (여기에는 신학도 포함이 됩니다. 그러나 절대 복음은 신학으로 배울수가 없습니다. 물론 신학이라는 도구를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것은 맞습니다. )

 

 도박에 중독된 자들은 어느날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패에 잠깐 앉았다가 날아갔는데 그 판을 이긴 경우 그 자는 다음에도 이 '파리 패턴'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파리'를 기다리죠. '파리를 믿는 작은 종교'가 탄생하는 시점입니다. 이게 바로 인간입니다. 


 본문에서 성령께서 말씀하고 있는 ‘예언’이라는 것은 복음이 말하고 있는 세상을 알게 되어 그것을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환상’이라는 것은 복음이 말하고 있는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복음이 말하는 실체적 세상, 즉 천국의 참 의미를 알게 되어 그것을 바라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을 현대 교회에서는 미래를 점치게 되는 것, 남들이 못보는 것을 신비롭게 보는 것, 잠자다가 꾸는 이상한 꿈으로 바꾸어 놓았죠. 이것을 ‘무당’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는 선택받은 자들을 찾으셔서 성경을 통해 복음을 가르칩니다. 그 복음을 알게 되면 이 세상이 온통 복음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모든 세상이 오직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자녀로 있을 때, 젋은이로 있을 때, 늙어갈 때 마다 그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복음을 인식하는 범위도 넓어지고 다양해 진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기사와 징조'로 '피와 불과 연기'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말하고 불은 심판을 말하며 연기는 감추어진 비밀을 말합니다. 고로 '기사와 징조'는 바로 복음의 계획을 뜻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기사는 바로 복음의 계획을 하늘에게 시작하여 내려온다는 것을 뜻하고, 땅에서의 징조란 그렇게 계획된 복음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란 복음이 이 땅에서 실현되기 전의 상황을 뜻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을 뜻하기도 하고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을 말하기도 하겠지만 진짜 실체는 선택받은 자들이 복음을 받기 전의 환경을 뜻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됩니다. 

 

 즉, 복음을 받기 전의 선택받은 자들의 환경은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다.' 고 합니다.  해와 달은 이 땅에서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불변의 물체'입니다. 해가 어두워지듯이 그 불변의 법칙이 깨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즉, 인본주의가 주는 절대 가치관이 깨져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바라고 믿고 갖고 싶은 모든 이 세상것들의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이것을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통한 자가 되죠. 그런데 이런 자들에게만 성령께서 주시는 복음의 위로가 들어갑니다. 

 

 그때 부터 그들은 의(예수님)에 굶주려 예수님의 긍휼을 받게되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아 하나님을 보고 사는 삶인 천국의 삶을 살게 되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사도행전(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2:25-28(22.05.18.수)  (0) 2022.05.18
행2:22-24(22.05.17.화)  (0) 2022.05.17
행2:1-13(22.05.13.금)  (0) 2022.05.13
행1:15-26(22.05.12.목)  (0) 2022.05.12
행1:12-15(22.05.11.수)  (0) 2022.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