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완료)

행3:25-26(22.05.31.화)

은혜바라기 2022. 5. 31. 08:0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오늘은 베드로 설교의 마지막 엔딩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의 자손이라고 지칭하여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복음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사도행전의 방향성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이라는 주인공이 안 계신 ‘시간’ 동안 그 분의 역할을 수행할 대역들(사도)을 통해 성령께서 복음에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성경을 완성한 책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말과 행동을 진리로 받아 들이면 곤란합니다. 그것을 통해 성령께서 어떤 복음의 진리를 말씀하고 계시는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선민 사상에 사로잡혀 있죠. 그런데 성령께서 이 선민 사상을 성경 기록에 사용하신 목적은 바로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선택된 나(교회)’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오직 복음을 기록한 책이고 이 복음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다른 말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속성이 바로 ‘선택’입니다. 사랑의 속성 상 내 아내를 99% 선택하고 옆집 여자를 1%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자체를 타 민족과 구별하여 선택하신 것과 그 안에서도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 그리고 이스마엘과 이삭 중 이삭을 선택하시고 약속하신 것, 그리고 에서와 야곱 중에 야곱을 선택하신 것 심지어 ‘하나님께서 태중에서 부터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속성’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즉, 복음의 속성이죠. 즉,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도 베드로의 민족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언약의 자손’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죠. 즉, 선택받은 자들은 이미 태초에 언약으로 예정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알미니안 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 손을 내밀면 이 손을 잡을지! 안 잡을지! 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죠. 복음을 전혀 모르는 인본주의 종교의 끝판 왕이죠. 사실 기독교 2천년 역사는 이 싸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장로교를 제외한 대 부분의 교파가 이것을 따르죠. ( 물론 타 교파의 목사 중에서도 이것에 모순을 가지고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가르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이 ‘알미니안 주의’가 이해는 갑니다. 성령으로부터 눈이 떠지고 복음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과 일방적인 예정론을 절대 인간이 이해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25절 후반을 보면,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하죠. 여기서 ‘모든 족속’이라는 부분 때문에 또 어떤 이단은 ‘보편적 선택과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 때의 이 ‘모든’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선택한 모든’이라고 해석을 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특이한 관점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관점으로 갈리는 이유는 바로 ‘기준’의 문제입니다. 성경을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모든’은 ‘모든 사람’이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하나님이 선택한 모든’이라고 보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 분이 선택하지 않은 자들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십니다. 아애 관심 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이 범주에 있는 자들을 ‘유기된 자’라고 말하죠. 

 그리고 25절 ‘너의 씨’는 정확하게 예수님이시죠. 그리고 ‘복’이란 바로 ‘복음’을 말합니다. 여기서도 인간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이 갈립니다. 인간들이 생각하는 복은 바로 ‘잘살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에서의 ‘복’은 오직 ‘복음’뿐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주시는 유일한 분은 바로 예수님이 되시죠. 그런데 이 분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시기 때문에 ‘너의 씨’로 표현한 것입니다.  26절에서 이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라고 하죠. 즉, 예수님을 통해 복음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고 설교를 마무리 합니다. 

 여기서 '너희에게 먼저’라는 것은 너희 유대인이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때의 ‘먼저’란 바로 셈플을 뜻합니다. 포도를 사기 위해 그 중 한 알갱이를 먼저 맛 보면서 맛이 좋은가? 아닌가?를 테스트하기 위해 셈플링을 하죠. 이 때 이 셈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포도송이가 중요하죠. 이것을 뜻합니다. 즉, 이글을 읽은 우리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복음을 알게 되어 이스라엘처럼 악함을 버리고 복음의 진영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악이란 인본주의를 뜻합니다.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내가 그곳에서 분리되어 복음의 진영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셔 이 설교가 끝나자 마자 4장 4절에 보면 5천이나 믿게 된다고 되어 있죠. 성경에서 5는 말씀을 뜻하는 숫자입니다. 즉, 말씀의 본질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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