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17절을 ‘나쁜 놈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착한 사람을 감옥에 가두었구나~~’로 시작하시면 안됩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라는 말은 지금의 교회 구성원을 가리킵니다. 교회의 목사, 장로, 권사, 집사를 가리키는 말이죠. 이들의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예수님의 표지판인 사도를 옥에 가두는 것은 교회에서 복음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조금 어렵죠? 이 ‘시기’라는 단어부터 정확하게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어떤 에피소드를 진행시키고 그 에피소드의 원인을 ‘시기’라고 분명하게 드러내신 이유는 그것을 단지 ‘잘못된 인간의 순간적이 감정’을 드러내고자 함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그렇게 가볍지 않습니다 성경의 일획 일점도 우주의 것보다 크죠.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인간이 죄인이 된 과정을 보여주는 선악과 에피소드를 살펴보면 그 첫 장면이 바로 사탄이 인간에게 ‘시기심’을 심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렇게 사탄은 인간의 시기심을 부추겨 선악과를 먹게 끔 유도한 것이죠. 이 과정은 지금 인간 세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교회에서도 만연되고 있어 복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그들은 교회 부흥을 위해 사람들을 초청하고 교회의 양적 부흥을 시키기 위해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죠. 그러나 복음이란 광야생활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말하죠. 그런데 이렇게 복음을 전하면 모든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거부합니다. 교회를 떠나가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순간 모든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떠나간 것처럼 말이죠.
성령께서는 이런 실체적 본질을 교회 구성원들이 ‘시기’로 말미암아 복음(사도)을 옥에 가두는 장면으로 설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19절 ‘주의 사자’가 등장하죠. 정확하게 '주의 사자'는 성령님을 가리키는 표지판입니다. (이 주의 사자가 하나님인지, 천사인지를 구분할 필요 조차 없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영적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정의를 어떤 식으로라도 정립을 시키려고 노력하는 순간 이단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교회의 모든 구성원의 ‘시기(죄)’로 말미암아 복음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이 첫 번째 주제라면 두 번째 주제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성령께서는 복음을 전파하여 그 분의 지체들을 모으신다는 것입니다.
19-21절에 보면 재미있게 표현이 되어 있죠.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에서 사도를 끌어내죠. 즉, 복음은 인간의 행위와 노력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홀로 모든 것을 끌어내고 이끌고 가시는 것을 뜻합니다. 이 19-21절에 매우 재미있는 댓구 문구가 나옵니다.
‘밤에 옥문을 열고’ 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입니다. ‘밤’과 ‘새벽’의 차이는 바로 ‘빛’의 유무입니다. 빛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표지판(상징)이죠. 그리고 옥문은 인본주의를 가리키고 성전은 바로 복음의 진영을 가리킵니다. 연결하면 성령께서 예수님의 지체들을 인본주의에서 분리시키고 복음의 진영으로 모아서 빛되신 예수님께 연합시킨다는 것이 두 번째 주제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눈에 보이는 장면대로만 해석하려 하면 안됩니다. 그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성령님의 의도를 보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후 23절 보면 교회 구성원들이 와서 보니 옥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게 되고 의혹을 갖게 되는 장면을 통해 이런 시기(죄)를 갖고 있는 교회 안에는 어떠한 복음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성령께서 알려 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도(복음)가 옥에서 나와 성전에서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인간의 시기(죄)와 상관없이 성령께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율법과 제사를 주신 이유는 인간은 절대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과 인간은 제대로 된 제사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예수님)를 찾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와 같이 지금 현대에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주된 목적은 우리가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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