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완료)

행8:9-24(22.07.07.목)

은혜바라기 2022. 7. 7. 08:11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오늘은 시몬이라는 마술쟁이 에피소드입니다. 일단 이 시몬이라는 자의 정체성을 알아야 합니다. 과연 시몬은 누구를 상징하는 인물일까요? 이 자를 마술쟁이라고 표현한 것은 성령께서 아주 재미있는 무대를 마련한 것이죠. 하나님은 사실 매우 유머러스한 부분도 많으 있으십니다. 인간이 유머와 게그를 할 수 있는 것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어떤 한 형태를 닮은 것이죠. 오직 유머와 게그는 인간만이 할 수 있죠. 

 시몬의 정체는 바로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이해가 되시나요? 즉, 인본주의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따르며 부러워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대통령일 수도 있고 인기 가수일 수도 있고 돈 많은 사장일 수도 있죠. 그런데 성령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마술쟁이’라고 부르며 매우 재미있게 표현하신 이유가 뭘까요? 마술은 전부 ‘뻥’ 이죠. ‘속임수’입니다. 즉, 그냥 그럴싸하게 보일 뿐이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돈을 많이 번 후에 그 돈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경우도 종종 있죠. (마술과 같이 허상이라는 가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마술사 시몬이 빌립의 전도를 듣고 믿고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매우 복잡한 복음의 핵심이 숨어져 있습니다. 좀 더 깊은 묵상이 필요합니다. 분명히 13절에서 ‘시몬도 믿고’라고 되어 있고 세례도 받았다고 되어 있고 그 후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라고도 되어 있습니다. 정확하게 보셔야 할 단어가 바로 ‘믿고 + 전심으로’라는 단어입니다. 즉, 시몬의 믿음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6절에 보면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라고 되어 있죠. 즉, 시몬은 진심으로 믿고 따르고 있지만 그것은 성령이 주시는 복음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성령께서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설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몬의 다음 행동이 매우 독특하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18-19절에 보면, 시몬은 돈을 주고 이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부탁합니다. 여기서 대 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같으니라구~~’ 라고 비판을 하겠죠. 그러나 이 모습은 지금 교회의 많은 교인의 모습을 담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으로만 이루어진 구원의 모든 지분을 우리는 헌금과 봉사로 조금 보태기(사려는)하려는 것을 성령께서 이 에피소드를 통해 꼬집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20절 베드로의 대답은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하죠. 이 에피소드를 듣고 복음에 눈을 뜬 자들은 ‘아이구~~ 난 망했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옳은 방향성입니다. 

 구약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죠. 이사야가 그 동안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복음의 핵심을 알아버렸습니다. 이사야가 복음의 핵심을 알아버린 순간 그가 했던 말이 바로 ‘사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하죠. 그러면서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었다는 것, 즉 나는 ‘부정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그 때 천사가 이사야의 입을 숯불로 지지죠. 그 때서야 ‘정한 존재’가 되죠. 

 이사야가 나쁜 짓을 하다가 '난 부정한 존재이므로 망하게 되었구나~~'라고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전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그 행위와 말 자체가 전부 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오늘 말씀은 매우 중요한 복음의 핵심이 들어 있는 에피소드이기 때문에 깊이 묵상하셔야 합니다. 내가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영향력은 전부 다 ‘부정한 것’입니다. 복음에 눈을 뜬다는 것은 이사야와 같이 그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복음을 설명하고 전파하는데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 메카니즘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부정한 나의 말과 행위를 숯불로 정화시켜서 복음을 설명하고 전파하는데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더 잔인하게 말씀리면, 이렇게 제가 매일 포스팅하는 이 묵상도 전부 ‘쓰레기’일 뿐입니다. 이 쓰레기를 숯불로 정화시켜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전달하고, 설명하고, 깨닫게 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라는 것이죠. 성령께서 원하시면 여러분은 이런 글이 아니라 지나가다가 보는 꽃 한송이에도 복음을 알게 됩니다. 반대로 성령님이 선택한 자가 아니라면 이 묵상 보다 더 완벽하게 복음을 설명하는 글을 눈 앞에 가져와 놔도 그것을 다시 인본주의 방식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의 결말이 심심합니다. 시몬의 회개와 구원에 대한 결말이나와 있지 않습니다. 결말이 24절인데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이 구절이 끝이죠. 왜 성령께서는 이런 결말로 끝을 내셨을까? 이런 구성 자체도 성령께서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짜임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시몬은 마지막은 결국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주세요’입니다. 재미있죠?  시몬의 구원은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성령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즉, 시몬의 구원에 결론의 촛점이 있지 않고 그 구원을 위해 성령께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의 촛점이죠. 

 이제 성령께서 어떤 것을 복음의 초점으로 중요하게 삼고 있는지 아시겠죠? 이 당시 마술사 시몬의 구원은 그 분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 분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이 글을 읽고 있는 선택받은 자들에게 구원이 어떤 메카니즘으로 이루어 지는지를 설명하는 것에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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