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완료)

행9:43-10:35(22.07.19.화)

은혜바라기 2022. 7. 19. 08:38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고넬료의 환상 및 베드로의 환상 에피소드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오늘 본문 말씀도 길지만 내용도 어렵습니다.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

 오늘의 에피소드는 이방인 고넬료가 기도와 구제라는 의로운 행위를 많이 했더니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그를 구원하셨다는 내용입니다.  당연히 오늘의 말씀은 '의로운 행위를 많이 해라'에 촛점이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고넬료는 예수님의 표지판입니다. 그래서 2절에서 고넬료를 경건한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항상 기도하는 자, 백성을 구제(구원)하는 자로 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즉, ‘지금 고넬료는 예수님의 표지판으로 생각하면서 묵상을 해야 이 에피소드가 복음으로 이해를 할 수 있단다.~~’라고 성령께서 미리 판을 까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어떤 역할일까요? 바로 성부 하나님의 역할이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욥바의 무두장이 집에서 있게 하면서 이 에피소드를 진행시키는 것입니다. ‘욥바’라는 이름의 뜻은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무두장이는 가죽을 가공해서 가죽옷을 만드는 곳이죠. 가죽옷 하면 생각나는 것이 없나요? 아담이 죄를 지어 발가벗었을 때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만들어서 아담에게 입히셨죠. 즉, 베드로가 욥바의 무두장이 집에 있는 것은 ‘아름다운 곳에서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기 위한 배경 장치입니다. 

 그리고 고넬료의 직업은 군대의 백부장이죠.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을 할 때 하나님은 이들을 ‘군대’라고 칭했죠. 군대의 속성 중에 ‘명령받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여기서 명령은 바로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군대의 백부장, 즉 군대의 인솔자는 바로 ‘인자 예수님’입니다. 즉, 복음의 속성 상 교회의 대표자인 인자 예수님께서 모든 명령을 다 이행하셨기 때문에 그 부하(교회)들도 다 명령을 이행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죠. 이것을 복된 소식이라고 합니다. 

 이제 다시 정리를 해보죠. 고넬료는 ‘인자 예수님’의 표지판입니다. 즉, ‘나(죄인)를 품고 계신 예수님’입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시면서 묵상을 하셔야 오늘 에피소드에서 성령께서 정말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베드로의 환상을 묵상해보겠습니다. 정말 정말 깊이 깊이 골똘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조금만 방향성이 어긋나도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이 베드로의 환상의 방향성은 두 가지 큰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방인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 선민의 범주에 들어 있지 않은 자들을 모두 ‘부정한 자’로 여겼죠.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에피소드에서 여기까지만 알아듣게 됩니다. 

 그러나 이 환상의 또 다른 진정한 방향성은 바로 ‘삼위 하나님의 갈등’입니다. 베드로는 공의의 하나님의 역할을, 환상속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의 역할을, 고넬료는 죄인을 품고 있는 인자 하나님(예수님)의 역할을 각각 맡고 계신 것입니다. 

 즉, 지금 이 에피소드의 가장 핵심은 태초에 어떻게 구원계획이 설계되었는지를 성령께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 간단한 책이 아닙니다.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메어 땅에 드리웠더라’고 하죠. 숫자 ‘4’는 바로 ‘땅’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천지창조 전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곳에 각종 부정한 짐승들이 있다고 표현이 되죠. 이 짐승이 바로 ‘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갈등에 빠졌다고 표현한 이유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일들을 유한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바꾼 것이기 때문에 ‘진짜로 하나님이 무지하게 갈등하셨나부다~~~. 이상하네’ 라는 식으로 받으시면 안됩니다. 이 때의 갈등은 바로 ‘사랑의 또 다른 표현’으로 받으셔야 합니다. )

 그럼 이해하신 것으로 알고 다시 설명을 이어가면, 하나님께서 갈등하시는 이유는 바로 그 부정한 짐승들을 만든 분이 하나님 스스로라는 것입니다. 즉, 이 부정한 짐승들의 정체는 사실 정한 짐승(순결한 짐승)이라는 것이죠. 이것을 세 번 베드로에게 설명합니다. 즉, 삼위 하나님의 대화임을 가리키죠. 하나님께서 태초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랑의 고심을 하셨는지를 계속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느껴지세요?

 즉,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도 심판받는 자들과 똑같이 악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미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 죄인을 의롭다로 선언하셨기 때문에 이들은 의로운 자들로 불릴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 조건은 '하나님의 선언'에 가두어진 자들에 국한합니다.  '하나님의 선언'이란 곧 말씀입니다. 말씀은 곧 예수님이시죠.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래서 오늘의 말씀은 단순히 고넬료를 구원하는 에피소드가 아니라 가장 깊은 복음의 본질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2천년 전에 오신 예수님이 맞지만 그 당시 역사에 실존했던 '예수님이라는 인물' 혹은 '예수님이라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그 예수님의 정체성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복음의 주인공'이시죠. 그래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 복음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66권이 모두 필요하고 우리의 인생도 필요하고 과거의 역사도 필요하죠. 

 

 조금 다른 각도로 예수님의 정체성을 정의하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복음=사랑' 은 같은 말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가 20년을 살아도 부모의 사랑을 다 모르죠. 이후 자식을 낳고 손자의 탄생을 지켜 보면서 과거의 부모의 사랑을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참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복음이라고 하죠. 그리고 그 복음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그때서야 예수님을 보면서, '아~~~ 예수님이 결국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이시구나~~' 의 정체성을 엿보게 되죠.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엿보게 되어 '복된 소식을 알게 됨'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나마 가장 비슷한 형태가 '믿음'이기 때문에 '믿음'이라고 표현하는 것 뿐이죠. 그러나 이 땅에서 사용하는 '믿음'이라는 단어로 복음을 모두 표현하기에는 한참 부족합니다. 이제 아시겠죠? 인간이 무당을 믿듯이, 부처를 믿듯이 예수님을 믿은 것는 그냥 종교생활하는 것 뿐입니다. 

 25, 26절에 보면, 고넬료가 베드로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하는 말씀이 보이시죠? 성령께서 이 장면을 삽입하신 이유는  ‘ 고넬료도, 베드로도 지금 ’맡은 역할‘에 충실할 뿐. 그 역할의 진짜 주인이 아니다.’라는 것을 설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부정한 짐승이 가리키는 고넬료인 ‘나’를 구원하게 되죠. 그런데 그 결론 구절인 35절을 잘 보세요. ‘각 나라 중 (부정한 모든 짐승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가 결론이죠. 여기서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부정한 짐승 ‘모두’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중에 의를 행하는 짐승(나)을 구원하시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에는 인간 중에 의를 행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선언이 되어 있죠. 그래서 이렇게 ‘부정한 짐승 중에 의를 행하는 자’란 바로 인자 예수님을 뜻합니다. 즉 나를 품고 계신 예수님을 뜻하죠. 이것을 복된 소식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복음에 눈을 뜨신 분이 오늘 이 글을 읽으셨다면 마음이 정말 뜨끈 뜨끈 해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정말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십시오. 

 “롬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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