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완료)

행12:24-13:5(22.08.01.월)

은혜바라기 2022. 8. 1. 08:10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오는 장면이 나오죠. 이 때 부조는 어떤 교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다른 교회가 경제적인 측면을 돕는 것으로 성경에 표현이 되어 있지만 이것을 성경에 기록한 성령님의 의도는 ‘복음의 전파’를 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비슷한 뜻으로 성경은 계속해서 ‘고아와 과부’를 구제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고아는 부모가 없는 자, 과부는 남편이 없는 자를 가리키죠. 그런데 복음의 관점으로 보면 예수님이 우리의 영적 부모이면서 남편이시죠.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서 부모이자 남편인 예수님을 잃어버린 자가 된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고아와 과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제가 필요한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구제의 본질은 바로 ‘구원’입니다. 성경은 모두 이런 식으로 복음에 관한 기록 뿐입니다. 이런 방향성을 계속 유지하셔야 합니다.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아가보라는 자가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라는 예언을  하면서 바나바와 사울의 부조가 시작되었죠. 이 흉년이 바로 ‘복음의 흉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로마의 글라우디오 왕이 모든 기독교 유대인을 로마에서 쫓아내는 정책을 쓰게 되죠. 즉, 복음의 흉년이 시작된 것이죠.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를 하러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 오늘 말씀 첫 구절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의 결과로 복음의 구제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절에서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게’ 되죠. 

 모든 이야기가 전부 돈에 관련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직 ‘복음’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장1절-5절까지는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지나칠 만한 것이 들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복음의 일꾼으로 보내시려고 특별하게 간섭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바나바와 사울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안디옥 교회의 교인(여기서는 선지자들과 교사라고 표현이 되어 있죠.)에게 말씀하셔서 간접적으로 바나바와 사울에게 명령을 내리십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성령께서 복음 전파의 계획은 교회단위로 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조심스럽게 이해를 하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성령께서 강조하는 것은 교회라는 단체가 개인보다 우선한다는 집단논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은 교회를 위해 희생하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이런 방식의 논리는 모두 ‘인본주의’에서 탄생한 논리입니다. 나보다 회사를, 나보다 가족을, 나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이라는 집단우선주의를 배우고 듣고 자랐기 때문이죠. 이 사상이 틀렸다. 맞다를 말씀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일단 이런 사상과는 전혀 다른 성령의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이 장면에서 성령께서 말씀하고 싶은 것은 바로 ‘한몸원리’입니다. 교회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시죠. 즉, 이 복음의 전파를 바나바와 사울이라는 인물로 독단적으로 끌고 가게 되면 어느덧 우리는 바나바와 사울이라는 인물에 치중하게 되어 복음의 핵심원리를 잊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이렇게 교회를 통해 바나바와 사울에게 명령을 전달하신 것입니다. 즉, 교회라는 집단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영향력을 지우시려는 의도입니다. 

 그래서 만약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전도를 잘해서 교회가 복음적으로 풍성해졌다고 해도 이것은 그 ‘어떤 사람’의 능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영향력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영향력으로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 전체의 영향력이라는 뜻은 바로 ‘예수님의 머리되심의 영향력’으로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한몸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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