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오늘부터는 바울의 설교입니다. 유대인 회당의 예배형식은 대표가 말씀을 공동으로 읽고 이후 의견이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나와서 설교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방식을 이용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죠.
일단 ‘설교’라는 단어의 뜻부터 잘 아셔야 합니다. ‘설교’는 강의가 아닙니다. ‘설교’의 뜻은 ‘책망’이라는 뜻입니다. 교회에서 설교가 재미있고, 삶에 도움이 되며, 나의 인격을 더 높여주는 도구가 된다면 그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설교는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 분리된 죄인의 죄를 드러내고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요16:8 그(성령)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이 구절에서 나온 ‘책망’이라는 단어의 뜻이 바로 설교입니다. 그런데 이 책망(설교)을 정확하게 다룬 성경이 바로 ‘잠언서’죠.
“잠15:5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책망)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잠9:7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
“잠9:8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잠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잠언에는 수도 없이 이 책망(설교)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지혜로운 자, 즉 복음에 속한 자들은 이 책망을 통해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나옵니다. 또한 이 책망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자, 즉 복음에 속한 자, 즉 예수님께 속한 자들만 듣는다고 나오죠. 그래서 오늘 말씀 16절 하반절에 보면, 바울이 이 설교(책망)을 하기 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라고 하는 말씀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즉, 설교(책망)는 오직 선택받은 자들만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목사들은 설교할 때 오히려 책망하는 설교를 피하려 합니다. 성도들이 그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책망을 하는 목사들이 다 옳은가? 그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책망은 인본주의 종교 관점의 책망이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 밖에서도 예수님의 향기를 뿜으면서 살아야 되는데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가?’라는 ‘잔소리’죠.
또한 완벽하게 복음에 근거해서 책망을 하더라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것을 듣기 싫어하죠. 그 이유는 그 성도가 복음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책망이 듣기 싫더라도 자신을 변화시켜보려고 노력하는 방향에만 서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조금은 성숙한 자들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 길도 바른 길은 아닙니다. 어렵죠? 결국 교회에서 우리가 듣고 있는 설교는 실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망(설교)을 듣고 그 책망 속에서 소망을 발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복음의 책망은 매우 무섭습니다. 즉, 우리가 어찌 어찌 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힘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죠.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이 소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방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같은 교회, 같은 말씀, 같은 설교에서도 이렇게 많은 길로 나뉘죠? 이렇게 천국은 그물로 물고기를 모아 놓고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를 골라내는 작업으로 이루어 집니다. 교회 그리고 그 교회에서 듣는 설교는 마치 그물의 단계에 있는 물고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진정한 책망을 듣고 나의 무가치함, 무능력한, 죄됨을 알게 되어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는 길만이 참 생명의 길입니다.
“마13:47-48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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