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어제 묵상까지는 이스라엘이 애굽이라는 인본주의에서 분리되어 광야라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묵상 했죠. 그런 이스라엘이 드디어 하나님이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가나안은 천국을 의미하는 땅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지워야 할 천국의 개념은 ‘행복한 장소’입니다.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서 젖과 꿀이 뭐죠? 젖은 영적 양식인 말씀, 즉 복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꿀은 달콤하지만 누룩의 기능이 있죠. 즉, 인본주의를 뜻합니다. 그래서 ‘가나안’은 이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이 세상 속에서 선택된 백성이 인생을 살면서 그 안에서 복음인 젖과 인본주의인 꿀을 경험하면서 우리가 오직 예수님만을 소망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삶의 방향성을 뜻합니다.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정리해보죠. 하나님께서는 태초 전에 그 분의 자녀를 이미 선택하셨다고 했는데 왜 이 인본주의 땅으로 그들을 보내서 나그네의 삶을 살게 하실까? 그 세상에서 복음과 인본주의를 경험하고 오직 예수님만을 소망하게 되면서 예수님의 지체가 되는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개념입니다.
“마13:47-48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여기서도 예수님은 천국을 이상하게 설명하시죠? 천국을 어떤 장소라기 보다는 심판(골라냄) 혹은 과정을 통한 관계의 소유로 표현합니다. 이 마태복음13장47절에 나온 ‘그물’의 정체가 우리의 인생, 혹은 우리가 다니는 교회 혹은 구약의 가나안입니다. 이 안에서 우리는 복음과 인본주의를 다 경험하고 그 결과로 나쁜 것과 좋은 것으로 분리되죠. 그래서 좋은 것은 어부의 것이 됩니다. 즉, 천국의 최종 결과는 바로 ‘어부와의 관계’입니다. 어부는 당연히 예수님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검은색과 흰색을 나란히 대비시켜서 흰색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젖과 똥이라고 하시지 왜 젖과 꿀이라고 하셨을까요? 바로 이 검은색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검은색도 선하게 창조되어서 악한 역활을 맡고 있는 것뿐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과 스스로 분리시킨 우리의 마음 빼고는 악한 것이 단 1도 없습니다. 이 말은 오직 우리만 악하다는 말입니다. )
그래서 오늘 말씀 첫 구절인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는 바로 인본주의 심판, 즉 나쁜 고기를 골라냄을 뜻합니다. 7족속이라고 명시한 것은 바로 이 가나안 부족 자체를 ‘나쁜 놈’이라고 바라보지 말고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나쁜 역할로 보거라~~’라는 뜻입니다. 7은 복음의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이라고 나옵니다. 사사시대는 일정기간 동안 하나님이 지정한 자를 통해 통치를 받던 시대를 뜻합니다. 그 유명한 삼손같은 자들이 있죠. 조금 다른 각도로 보면 사무엘이 마지막 사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자기의 소견대로 행하였으므로..’ 인간은 늘 자기의 기준(소견 :인본주의)대로 삶을 살아가죠. 그래서 늘 고통이 따라오고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보내서 그들을 구원하죠. 사사기는 계속 이 형태를 반복하여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결국 여기서 사사는 바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즉, 사사기는 바로 복음을 농축해서 계속 반복한 책인 것이죠.
그러나 이스라엘은 결국 이런 사사의 시대를 거부하고 인간들의 왕을 요구합니다. 즉 인간이 직접 정치를 시작한 것이죠. 하나님은 이것을 ‘인간들이 하나님의 통치 받기를 거절하는 것’ 즉, 하나님을 버리는 것으로 설명을 하시죠. 그래서 최초의 왕은 인간들이 보기에 가장 모양이 좋아 보이는 사울왕이 선택이 됩니다. 즉, 인간들 중에 최고의 사람을 뽑아 인간 스스로 정치를 시작합니다. 왕정이 시작된 것이죠.
그러나 결국 사울은 실패하는 왕으로 결론이 납니다. 이후 하나님이 뽑은 다윗이 왕이 됩니다. 다윗이 바로 예수님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상은 바로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가 핵심입니다. 사울은 나의 옛자아의 표지판이며, 다윗은 선택받은 나의 거듭난 자아를 가리키는 표지판입니다. 나의 옛자아는 인본주의를 가리키는 표지판이기도 하고, 거듭난 나의 자아는 바로 예수님의 지체이므로 예수님을 가리키는 표지판이기도 하죠.
이 사울과 다윗은 둘 다 ‘나’입니다. 그래서 항상 붙어 있게 되죠. 그러면서 사울은 다윗을 항상 박해하고 다윗은 늘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죠. 그래서 성경은 다윗을 통해서 ‘선택된 나’를 계속 설명하고 있는 것이고 다윗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즉, 다윗의 허리 안에 예수님이 들어 있다는 것은 다윗과 예수님의 관계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다윗을 박해하는 사울을 통해 인본주의로 대변되는 나의 옛자아를 계속 설명하죠. 내가 선택받은 백성으로써 이 세상에서 복음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나의 옛자아로부터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후 등장하는 요주의 인물인 ‘요나단’은 바로 약속과 믿음을 뜻합니다. 곧 성령을 가리키는 표지판입니다. 이렇게 한 나라의 왕국의 역사가 오직 복음만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랍죠?
끝
P.S 매주 금요일은 전도에 대한 반복 메시지를 올려 드립니다. 사명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고 그냥 살아가시다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눈에 들어오면 이 묵상을 권해 주세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파해 주세요.(그러나 이 뜻은 '아무 때나 무조건‘ 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도 행위로 파악하여 책임감에 어깨가 짖 눌리신 분들이 많죠. 이 말은 "전도는 인본주의를 고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
전도는 설득이 아닙니다. 복음은 설득과 이해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들의 모습은 매우 동일합니다. 길을 잃어 버려서 마음이 가난해져서 애통한 상태죠. 즉,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고 애통한 상태에 놓여 있죠.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복된 모습'입니다. 복음(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듣기 좋은 설교, 외롭지 않은 교회 활동, 나의 가치를 높이는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하지만 잃어버린 양들은 '참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구석에 '텅 빈 가난함'을 인식하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늘 모순됨을 인식합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 막혀 있는 곳에서 길을 잃어 버립니다.
주위에 이런 분들이 눈에 들어 온다면 이 묵상을 권해 주세요. 반대로 마음이 부유한 자들을 설득하려 하지 마세요. 마음이 부유한 자들이란 사회에서, 교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쌓아가는 자들입니다.(물론 그들 중에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 가난함을 인식하는 자들도 있겠죠) 그들에게 그 가치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의 가치만을 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예수님의 가치가 충돌하죠. 그리고 다시 한번 예수님을 살인(부인)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여러분을 박해(오해)하죠. 이것은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살벌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관계가 부모와 자식, 형제와 형제 즉, 가족입니다. 사랑하기에 때릴 수 밖에 없는 관계라고나 할까요!!
오직 삶(인생과 신앙)의 가치를 잃어버린 여러분의 참 형제를 찾아 이 글을 권해주세요. 그들이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 여러분의 참 형제요, 자매가 되실 분입니다. 그 날을 생각해 보세요^^
주말과 공휴일은 묵상이 없습니다. 친구, 가족과 재미있게 잘 보내시고 다니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도록 기도하세요. 재미있게도 눈을 뜬 자들은 어떠한 이단목사의 설교를 통해서도 복음으로 가공해서 해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들의 행위는 본 받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은 잘 지켜라 ” 어떠한 기독교 이단이라도 성경말씀을 전파하는 통로로 하나님은 사용합니다. 이 말은 어떠한 정통교회 목사라도 이단적 발언은 항상 존재한다는 말이죠. (저의 묵상을 포함해서 모든 가리키는 손가락들은 진리가 아닙니다. 오직 말씀이 가리키는 목표인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 홈페이지 처음에 보면, 지난 묵상과 특별 묵상이 포스팅되어 있습니다. 시간 나실 때 마다 계속 보시면서 묵상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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