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완료)

행15:12-21(1부)22.08.29.월

은혜바라기 2022. 8. 29. 08:40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어제 ‘할례’에 대한 묵상을 했었죠. 이스라엘에서 할례는 신앙생활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규례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멍에’일 뿐이라고 직전 묵상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신앙생활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 본질인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게 되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그것을 어제 베드로의 입을 통해 결론 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각도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오늘은 야고보의 입을 통해 좀 더 깊은 가르침을 주시죠. 조금 어렵습니다. 잘 따라오세요. 

 16절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라는 부분은 정확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표지판이죠. 그리고 장막은 천국의 표지판입니다. 그리고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개념이죠. 즉, 천국이란 예수님과 ‘내’가 맺어진 것, 즉 내가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 한몸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그분의 품 안에서 나도 같이 부활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 뒤에 나온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라는 말이 반복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반복하신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17절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고 나오죠. 하나님의 선언은  ‘이미 이루어짐’이라고 했습니다. 즉, 이방인들이 주를 찾아야만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각에서 기록을 한 것 뿐입니다. 이 말씀의 본질적 해석은 ‘이방인이 주를 찾아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방인을 견인해서 주의 지체로 모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기 힘든 이유중에 하나는 바로 ‘수동태’과 ‘능동태’의 오해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인본주의 종교인들은 성경 말씀을 자신이 열심히 해야 하는 '능동태’로 받아들이죠. 하지만 성경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즉, 예수님이 능동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수동태’가 됩니다. 그런데 거부할 수 없는 수동태가 되죠. 그래서 이것을 ‘적극적 수동태’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어렵죠? 우리말로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재미있게도 그 당시 성경을 기록한 헬라어는 수동태와 능동태 두 가지 모두 사용이 가능한 ‘중간태’라는 문법을 가지고 있는 글자였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은 이 중간태를 사용해서 기록을 하셨죠. 이런 부분도 너무 은혜롭지 않습니까?

 말 나온 김에 성경 역사에 대해 좀 더 은혜로운 부분까지 다뤄보죠. 인간의 언어와 문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와 뜻과 문법이 바뀝니다. 예를 들어 ‘게이’라는 뜻은 원래 ‘즐거운’라는 긍정적 형용사였습니다. 그런 글자가 20세기에 들어와서 남자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단어로 바뀌었죠. 이렇게 인간의 문자와 문법은 시간이 지나면서 매우 빠르게 바뀝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기록한 헬라어도 2천 년 동안 매우 많이 바뀌었겠죠? 그렇다면 2천 년 전에 성경에 기록한 뜻과 의미와 문자를 지금 우리는 전부 다 오해하면서 읽고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성경을 기록한 헬라어는 그 형식과 문법이 전혀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헬라어는 성경에 기록된 후 빠르게 ‘사어(죽은 언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당시 헬라어는 그 일대의 문화를 통일한 그리스 문명의 언어였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 빠르게 없어질 언어가 아니었죠.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헤라어는 성경 말씀의 온전한 보존을 위해 빠르게 소멸한 언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즉, 소멸된 언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언어의 뜻과 문법이 그대로 보존이 된 것이죠. 어때요? 은혜롭죠?

 어차피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다뤘으니 한 가지 더 다뤄볼까요? 이 세상의 모든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일 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을 반대로 알고 있죠.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입니다. 

 보통 기독교인들은 이런 오해를 갖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되면 잘 사는 나라가 된다.’ 이런 오해는 잘못된 역사관를 갖게 하죠. 즉, 전 유렵이 기독교 강국이 되었을 때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각 나라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사는 나라들이 되었다고 인식을 합니다. 즉, 어떤 나라든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 부유한 나라로 발전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관은 복음적으로 완벽하게 반대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복음으로 본 올바른 기독교 역사관은, 전 유럽이 기독교 강국이 되었을때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이라는 인본주의와 자본주의가 기독교를 쇠퇴시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 최강국 부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이미 미국은 청도교의 복음으로 꽃을 피운 나라였죠. 그런데 그 속에 인본주의와 자본주의가 들어가면서, 즉 미국이 부유한 나라가 되면서부터 미국은 복음에서 조금씩 뒤로 물러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가 복음에 꽃을 피우던 시절은 우리가 잘살기 시작한 때가 아닙니다. 평양 대 부흥운동, 혹은 일제 강점기, 혹은 경제 기초 시대일 때가 오히려 복음이 확장된 시기였죠. 그랬던 나라가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부터 복음은 뒤로 물러나게 된 것입니다. 

 즉, 어떤 나라가 복음이 확대될 때 그것을 가장 잘 무너뜨릴 수 있는 사탄의 전략은 바로 그 나라를 잘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자본주의(인본주의의 경제적 측면)에 빠지게 하는 것이죠. 물론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도 결국 '인간이 모두 뭉쳐 잘 살자'라는 방향성이기 때문에 결국 공산주의도 인본주의의 경제적 측면 중 또 다른 얼굴일 뿐입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또는 사회주의도 마찬가지죠. 이것들도 결국 인본주의의 정치적 측면의 또 다른 얼굴일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전부 다 '인본주의'라는 공통된 뿌리를 가지고 있죠. 결국 사탄은 복음이 확대될 때마다 인본주의라는 매력적인 '선악과'를 그 모양만 바꾸어서 인간에게 던져 놓는 것일 뿐입니다. 

 어떠세요? 잘 살고 싶으세요? 난 부자가 되어도 절대 복음에서 멀어지지 않을 것이다~~~ 기부를 많이 하면 되지! 어려운 사람, 어려운 교인을 많이 도우면 된지~~~  교회 헌금을 많이 하면 되지~~~ 그렇다면 그는 ‘인격’이라는 또 다른 인본주의 측면의 쌓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좋은 인격을 칭찬받기 원하는 바벨탑을 쌓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죠. 인간은 절대 이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마음이 늘 가난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늘 애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 소망해야 합니다. 

 오늘은 묵상이 조금 엉뚱한 방향으로 향했네요.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은 형식에 구애 받지 말고 그 말씀의 본질인 복음, 즉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한 것을 내일 이어서 (2부)로 묵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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