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로마의 관리들이 감옥에 있는 바울과 실라를 석방하라고 하자 바울은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는 이야기가 오늘 묵상의 초점입니다.
일단 이 이야기는 바울의 ‘속 좁은 협박’입니다. 지금 바울은 인간 바울의 억울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바울은 약간의 협박까지 섞어서 이야기하고 있죠. 그런데 성령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왜 성경에 기록하셨을까요? 당연히 복음을 설명할 수가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사용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재판 없이 때리고 감옥에 가두면 안 됩니다. 이것은 오히려 더 큰 법에 걸리는 것이죠. 이것은 의인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는 것은 더 큰 법에 걸리는 것이 된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감옥에서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들이 했던 일에 책임을 지라는 말입니다. ‘내가 맞았으니 너희도 맞자~~’라고 되어 있다면 더 이해가 쉽겠지만 성경은 이솝 이야기나 작사가 마음대도 쓸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사실만을 기록하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내용의 전개는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 사람이긴 하지만 이방에서 들어온 평범한 나그네일 뿐이죠. 그런데 이런 바울이 그 지역의 최고 관리자에게 직접 와서 옥문을 열고 나를 권하여 데리고 나가라고 하는 것은 매우 강력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이것을 가지고 복음의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지를 들여 다 봐야 합니다.
이 세상은 죄가 전혀 없으신 예수님을 때리고 십자가에서 죽였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물론 이 세상은 ‘심판’이라는 책임을 지게 되죠. 그런데 이것은 책임이라기보다는 ‘원금’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감히 인간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분의 수준에 있는 분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성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책임과 보상으로 ‘예수님의 신부(지체)’의 구원을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 상관들이 감옥에 있는 바울과 실라를 직접 권하여 감옥에서 나가게 하죠. 그것은 바로 성부 하나님(상관)께서 이 땅(감옥)에 묶인 선택된 자들을 직접(친히 와서) 구원(석방)시키는 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친히 와서 구원을 감당하셨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와서 친히 구원을 감당하신 것이죠.
이렇게 성령께서는 바울의 속 좁은 화풀이 마저 복음을 설명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복음을 자세히 설명하시죠.
이후 39절 하반절 보면,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라고 되어 있죠. 즉, 그들은 예수님과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심판'의 개념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심판이란 나쁜 놈을 벌주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진정한 심판은 '분리'의 개념입니다. 즉,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 즉 예수님과 분리되는 것을 의미하죠.
성경에서 '벌 받고 고통받는 모습들'은 대부분 심판이 아닙니다. 회초리죠.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10개의 재앙도 복음을 설명하는 회초리일 뿐입니다. 진정한 심판은 애굽과 이스라엘이 분리된 시점입니다. 이때 애굽인들 중에서도 이스라엘을 따라 가나안으로로 출발한 사람들이 존재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회초리를 복음으로 이해한 사람들이었겠죠.
그래서 성령께서는 바울을 가둔 로마 관리들이 말한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라는 말씀으로 '분리'라는 심판을 가르치자마자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로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한쪽(로마관리)은 분리를, 한쪽(형제)은 위로를 받게 되는 장면이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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