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완료)

행16:24-34(22.09.13.화)

은혜바라기 2022. 9. 13. 08:35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직전 묵상에서 보면, 귀신들인 점치는 여종으로 인하여 ‘잘살기’에 묶여 있던 그녀의 주인이 그 여종이 귀신에서 벗어나면서 ‘잘살기’에 방해를 받자 그 귀신을 쫓아내고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실라를 고발해서 감옥에 넣어 버렸죠. 이렇게  복음은 인본주의가 지향하는 것을 방해하고 인본주의는 복음을 핍박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인본주의에 의해 결박당한 바울이 갖힌 감옥을 지키는 간수 에피소드가 묵상의 포인트입니다. 직전의 묵상에서 ‘바울은 주님의 뜻대로 복음을 전했는데 왜 감옥에 갔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벽하게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나의 인생에 단 1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지 나의 생명(구원)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영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죽은 나를 살리는 일(복음)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착한 일(복음 전하는 일)을 했는데 왜 감옥에 갔는가? 는 하나님의 방향에서는 단 1도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관심은 그 감옥의 ‘간수’가 그 곳에 있고 그 간수를 영적으로 살리시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간수가 바로 ‘나’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가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을 하죠. 즉, 계속 복음의 사역을 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사도라는 예수님의 대역을 사용해서 계속 예수님을 표현하고 설명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지금 예수님의 표지판입니다 

 이 둘이 감옥에 갖힌 것은 예수님이 이 땅이라는 감옥으로 내려온 것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26절 보면,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고 표현된 것은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죄인들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그 죄에서 벗어나는 것을 표현하죠. 

 그리고 그 감옥을 지키던, 즉 인본주의를 지키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하던 내(간수)가 절망에 빠져 자결을 하려고 하죠. 이 모습은 이 세상의 인본주의 꼭대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붙잡고 매달리던 ‘내’가 그 꼭대기가 흔들릴 때 절망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그 꼭대기는 돈, 명예, 인기, 자식, 건강, 직장 등등 이 세상에서 내가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 모든 것입니다. 

 그런데 28절, 바울이 그 간수에게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복음이 어떻게 전달이 되는지 설명하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복음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에피소드는 전부 ‘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의 표지판인 바울이 크게 소리 지르지 않았다면 그 간수(나)는  자결하여 죽었겠죠. 그러나 예수님의 큰 외침이 나를 살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단다~~’ 이 말씀이 너무나 좋지 않습니까? 너무 행복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결코 바꾸지 않을 말씀이지 않습니까? 

 바울이 ‘우리가 여기 있노라 ~~ (그렇기 때문에 넌 죽지 않아도(자결) 된단다~~)’ 가 정확하게 복음의 핵심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께서 ' 내가 너와 함께 있단다. 그러므로 넌 항상 살 수 있는 것이란다.~~'입니다. 이후 간수는 29-30절에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으리니까?’ 라고 묻게 되죠. 

 이 말씀의 순서가 매우 중요한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간수는 이미 바울(예수님의 표지판)과 함께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나중에 묻죠. 이 순서가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회개를 해야 구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된 이유는 우리의 이해를 돕기위해 시간적 순서와 의미적 순서를 뒤집어서 설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인본주의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반성’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인본주의에서는 잘못을 할 때 반성을 해야 용서를 받은 순서로 이해를 하죠. 왜냐하면 인간은 반성을 해서 변화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절대 인간은 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즉, 나는 절대 변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의 진정한 의미는 회개 전에 예수님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그 분이 나로 하여금 알게 하여 ‘내가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존재였구나~~’를 인식하고 그분께 ‘제가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를 묻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즉, 내가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서 오직 그분께 나의 기준을 돌려드리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간수의 ‘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라는 질문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이 간수는 의미적 순서로 보면 구원을 받은 상태죠. 즉, 구원을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회개하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자의 특별한 질문(고민)이 바로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에는 내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이 1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그 구원의 은혜의 대상일 뿐이죠. 

 이후 바울이 그 유명한 대사를 외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죠. 다시 한번 순서를 잘 생각하세요. 잘못 생각하면 나의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 됩니다. 이것은 완벽하게 인본주의 종교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나와 함께 있는 것으로 이미 구원은 완성된 것입니다. 즉, 나의 조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구원)을 알게 된 나는 특별한 고민을 하게 되죠. 이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즉, 구원받은 삶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후 예수님은 그 삶의 방향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만 믿으면 된단다~~~’입니다. 여기에는 ‘그 무엇도 하려고 하지 말거라~~~’의 의미가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무엇을 하려고 2134가지 율법을 만들어서 지켜내는 자들이 있었죠. 그들이 ‘바리새인’입니다. 인본주의 종교인의 꼭대기에 서 있는 인물이죠. 

 이후 이 간수는 자신의 집으로 바울과 실라는 모셔서 씻겨주고 음식을 같이 먹는 장면이 나오죠. 즉, 최종적으로 예수님과 같이 살아가는 천국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17:1-10(22.09.15.목)  (2) 2022.09.15
행16:35-40(22.09.14.수)  (1) 2022.09.14
행16:16-23(22.09.06.화)  (0) 2022.09.06
행16:6-15(22.09.05.월)  (0) 2022.09.05
행16:1-5(22.09.02.금)  (0) 2022.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