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1절에 나오는 ‘갈대’는 측량 도구죠. 그런데 ‘지팡이 같은’이라고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나무 지팡이는 대표적인 십자가의 상징물입니다. 지팡이는 형태면에서도 십자가 기둥과 같은 모양이지만 기능면에서도 길을 잘 걷지 못하는 자를 잘 걷게 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죄인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이 땅을 살면서 그들의 옛 자아를 십자가 기둥에 못 박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만을 의지하여 이 세상을 뚜벅 뚜벅 걸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지팡이는 십자가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그런데 지팡이 같은 갈대(측정기구)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나옵니다. 이제 해석이 쉽죠? 십자가를 가지고 선택받은 자들을 측량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좀 더 깊은 묵상이 필요합니다. 1절을 잘못 생각하면, ‘내가 진정으로 구원받을 만한 신앙생활을 했을까?’ 라는 행위를 기준으로 판단하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여기서의 측량은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살고 있는가를 측량하는 것입니다.
이 1절은 갈라디서20:2에 나오는 말씀과 같습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로 내가 십자가에 예수님과 같이 못 박혔고 이후 그 분을 믿는 믿음 안에 살고 있는가?가 측량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행위’를 고집하는 자들은 절대 십자가에 못 박힐 수가 없습니다. 즉, 나의 행위가 기준인가? 예수님의 행위(십자가)가 기준인가? 를 측량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이미 예수님께서 홀로 이루신 일이며 우리는 단지 성령께서 오셔서 ‘네가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들어 있다~~’라는 복음을 듣는 것 뿐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이것을 듣고 ‘복음을 알게 되는 증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반대로, 2절을 보면, 아애 측량을 하지 말라는 명령도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유기시킨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도 이 땅에서 옛 자아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옛 자아는 유기된 자들과 똑같은 고난의 과정을 밟게 됩니다.
그래서 선택받은 자들이 이 땅에서 옛 자아로 살면서 받아야 할 고난을 시간으로 표현하여 ‘마흔두 달’이라고 나타낸 것입니다. 마흔 두 달은 1260일 혹은 한때 두때 반때(1년+2년+반년=3년반)와 모두 같은 수의 날입니다. 이 날들은 선택받은 자들의 ‘고난의 인생’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동안 거쳐간 장소가 마흔 두 곳이었죠.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도 3년 반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광야의 역사와 예수님의 힘든 공생애는 모두 선택받은 자들의 인생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100% 인생에서 이런 고난의 과정이 나타나는 증상을 겪게 됩니다. 이 고난의 과정 속에서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며 그 분만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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