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요한계시록11:7-8(24.10.11.금)

은혜바라기 2024. 10. 11. 08:05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7절의 ‘그들’은 직전 묵상에서 나온 두 증인입니다. 두 증인은 ‘예수님과 선택받은 자’가 함께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두 증인은 교회이기도 하고 예수님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고 교회는 예수님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두 증인은 거듭난 나와 옛 자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증언을 마칠 때라는 것은 ‘거듭난 내가 나의 옛 자아의 모든 죄를 다 발견하여 내가 죄인이구나~~’를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증거하는 삶을 살라~~’는 것은 길거리 나가서 전도지를 나눠주면서 열심히 전도해라~~ 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나의 옛 자아를 살펴보니 죄만 가득하구나~~를 내가 나를 통해 증거, 증명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되는구나~~를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전도는 나의 자랑 쌓기~~에서 시작합니다. 그것을 성령님께서 역설적으로 이용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초대교회 시절에 전도가 잘 되는 소아시아 쪽으로 가려고 고집했지만 성령께서 그런 바울을 막으시고 동쪽(유럽)으로 보냅니다. 하나님의 열심과 인간의 열심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증언을 마칠 때’라는 의미는 ‘내가 나의 옛 자아의 죄를 들여다 보니 나는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되는구나~~’를 알게 된 시기를 의미합니다. 이때 무저갱에서 나온 짐승과 교회가 전쟁을 하게 되는데 짐승이 교회를 이기고 죽인다고 나옵니다. 이후 8절, 그 교회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쌓이는데 이곳을 소돔 혹은 애굽이라고 하죠. 그리고 그 곳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두 증인(교회와 예수님)은 예수님을 가리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짐승이 교회를 죽였다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복음을 십자가에서 전하시고 죽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내가 나의 옛 자아를 통해 죄를 온전하게 알게 되어 나의 옛 자아를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소망하게 되는 것과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서로가 서로를 설명하는 머리와 지체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7-8절은 매우 해석이 어렵습니다. 잘 따라오세요. 

 무저갱에서 나온 짐승은 계시록9장에서 잠시 다뤘죠. 9장에서는 ‘황충’으로 표현이 되었죠. 이 황충은 어떤 물체가 아니라 '율법과 행위'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참소(고소)하는 사탄과도 같습니다. 

 어렵죠? 조금 쉽게 설명하면, 율법은 인간에게 온전한 행위를 요구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절대로 온전하게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율법의 기준을 바꾸거나 무시하죠. 하지만 그것은 늘 인간의 양심을 찔러서 괴롭습니다. 하지만 죽지는 않죠. 그것을 ‘황충 에피소드’로 설명한 것입니다. 

 오늘 나온 짐승도 마친가지입니다. 이 짐승을 단지 ‘사탄’이라고만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사탄도 복음을 설명하는 도구로써 지음받은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사탄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아마 사탄이 그랬을 거야~~ 라는 식의 해석은 모두 ‘종교적 사고방식’이므로 복음적으로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사탄은 영적 거울에 비친 ‘나의 옛 자아’입니다. 내 안의 ‘악’ 의 정체성을 사탄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죠. 7절에 보면, 짐승은 교회를 죽이죠. 하지만 3일 반 후 교회는 부활합니다. 고로 7절에 나온 교회의 죽음은 옛 자아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11절에서 교회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납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3일후에 부활하셨죠. 이렇게 예수님의 공생애는 정확하게 선택받은 자들의 인생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역순으로 설명하면, 선택받은 자들은 자기 십자가라는 고난 속에서 예수님의 참 십자가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3년 반(한때 두때 반=42달=1260일)이라는 공생애 기간은 교회가 이 땅에서 살게 될 ‘고난의 인생 기간’을 의미하죠. 그런데 그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죽은 지 ‘3일 반 후’라는 시간도 선택받은 자들이 이 땅에 묶여 있는 기간을 꼭 집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다 이렇게 땅에 묻힌 자들이다~~ 입니다.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우리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로 선택받은 자들이 이 땅에서 살 때 유일하게 가져야할 목표는 땅을 헤쳐 나가려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에서의 부활’뿐입니다. 그 어떤 삶을 살아도 이 땅에서의 삶은 흙 무덤 안에 묻혀 있는 시체의 삶일 뿐입니다. 고로 오직 예수님만을 소망하는 것만이 길, 진리, 생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