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완료)

요한계시록12:1-5(24.10.17.목)

은혜바라기 2024. 10. 17. 08:14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해는 빛을 내죠. 빛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가장 중요한 상징물입니다. 또한 성경에서 ‘여자’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고로 ‘해를 옷 입은 한 여자’는 예수님을 입은 교회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교회는 한몸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짐승을 만드실 때 암,수 구별하여 만드셨지만 오직 인간만은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이후 그 남자의 몸에서 여자를 끄집어 내셨죠. 이렇게 인간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 이유는 우리에게 예수님과 교회(여자)가 한몸이라는 것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 여자의 발아래 달이 있다고 하죠. 달은 스스로 빛을 낼 수가 없습니다. 달은 해의 빛을 반사해야만 빛을 내는 속성이 있죠. 이것은 대표적인 ‘교회’의 속성입니다. 교회는 절대 스스로 빛(선)을 낼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의 빛(선)을 반사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또한 여자의 머리에는 12별의 관을 썼다고 하죠. 성경에서 12는 교회의 숫자입니다. 구약의 12지파, 신약의 12제자는 모두 교회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12명이 꼭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사역들 때문에 12명을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어떤 제자는 거의 등장하지도 않죠. 예수님께서 필요하신 것은 숫자 '12'의 속성입니다. 12는 교회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늘에 있는 별도 천국에 모여 있는 모든 선택받은 사람들의 모임, 즉 진정한 교회를 가리킵니다. 이 세상은 전부 복음을 설명하는 교과서입니다. 성경은 그 교과서를 특별히 설명해 주는 특별참고서입니다. 

 그러데 2절을 보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애를 쓰며 부르짖는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교회 구원의 필요성이 예수님을 찾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죠. 

 그런데 3절, 갑자기 ‘큰 붉은 용’이 등장합니다. 이 붉은 용은 사탄이겠죠. 그런데 사탄을 그냥 사탄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매우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큰 유혹이 생길 때 ‘이건 사탄의 짓이다~~’라고 규정짓고 끝나는 것은 결국 ‘종교’일 뿐입니다. 사탄은 영적 거울에 비치는 ‘나’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탄에게 속해 있다고 말해도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분노의 자식들이라고 하죠. 어렵죠?

 이 큰 붉은 용은 머리가 일곱, 뿔이 열, 일곱 왕관이 있다고 나옵니다. 숫자 7은 복음적 완전수이기 때문에 이 붉은 용도 복음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라는 것을 설명함과 동시에 하나님을 흉내 내는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고 심지어 뿔, 왕관을 통해 이 세상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 사탄이 ‘이것을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라고 했던 장면이 기억나시나요? 사람은 이 때 부터 사탄과 한몸이 되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것이 최종 목적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 같이 되려고 이 세상을 정복하고, 경쟁하면서 끊임없이 바벨탑(뿔, 왕관)을 쌓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용하여 복음을 설명하시고 구원과 안식을 얻게 하십니다. 반전이죠. 사탄도 결국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 붉은 용이 별 삼분의 일을 땅에 던진다고 나옵니다. ‘별’은 선택받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 중 삼분의 일이라는 것은 선택받은 자들의 삼분의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선택받은 자들이 사탄에 의해 받는 고난이 제한적, 제약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조금 쉽게 풀면, 선택받은 자들도 이 땅에서 옛 자아로 살면서 인본주의 함정에 빠져 고난을 받게 되는데 그 고난은 제한적이고 제약적이므로 오히려 그 고난을 통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4절 하반절, 그 여자가 아이를 해산하면 용이 아이를 삼키고자 한다고 하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의미합니다. 교회 구원의 필요성이 생명되신 예수님을 이 땅에 오게 하였고 사탄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그 생명을 없애 버리려 하지만 그 십자가가 오히려 교회 구원을 이룬다는 역설의 스토리가 담겨 있죠.

 그래서 5절에서는 그 아이,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고 하죠. 예수님은 심판의 권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과 보좌로 올라간다는 것은 천국은 오직 예수님의 소유라는 의미입니다. 

 계시록은 묵시 문학적으로 표현이 되었기 때문에 큰 비밀의 문장처럼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전부 예수님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묵시 문학적 표현일 뿐입니다. 성경은 모두 복음에 대한 이야기이며 복음이란 예수님의 스토리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