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하늘에 큰 음성이 있다.’라는 것도 복음의 속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 즉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고 '큰'은 확실하고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을 의미하고 '음성'은 말씀을 의미합니다. 종합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에서 말씀을 통해 선택받은 자들에게 복음을 분명하게 전달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런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그리스도(메시야)의 권세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분은 누굴까요? 예수 그리스도죠. 당연히 이 문장도 예수님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시며, 능력이고, 나라(천국)이고, 메시야, 즉 구원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자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복음이 이 세상에 나타나면서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다고 나옵니다. 우리를 참소하던 자는 누굴까요? 사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좀 더 깊은 묵상이 필요합니다. (참소는 고소를 의미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참 기독교는 ‘예수님이라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믿는 예수님은 내가 상상한 우상에 불과합니다. 마음에 가로 세로 십자가를 상상하고 그곳에서 피 흘리고 있는 어떤 사람을 상상하여 믿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행위를 ‘종교’라고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죠. 사람이 만든 모든 종교는 모두 이런 식으로 우상을 만들어서 믿습니다.
참 기독교는 성령께서 선택받은 자에게 찾아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분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구원, 능력, 나라(천국), 메시야, 등등 수 없이 많습니다. 온 천하 만물도 전부 예수님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고 특히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만을 설명하는 책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정체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 사랑의 실체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이 성령으로 부터 예수님의 참 정체성을 듣게 되면 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성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세계관, 역사관, 인생관이 모조리 바뀌죠. 이런 증상이 없다면 아직 ‘종교’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은 예수님을 이용하여 내가 행복해지고 나의 삶이 풍성해지는 방향성을 가지게 되지만 반대로 선택받은 자들은 나의 삶이 무가치해지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소망하게 됩니다. 끝이 다르죠? (이것을 ‘다를 이 / 끝 단’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탄’입니다. 성령께서는 선택받은 자들에게 ‘예수님을 그냥 신으로만 잘 믿고 따라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분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그들의 전 인생을 통해 ‘예수님의 정체성’을 계속 가르쳐 주시죠. 그래서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믿어라~~’가 아닌 ‘예수님의 이름을 믿어라~~’라는 구절이 종종 나오는 것입니다. 이름은 정체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인들은 교회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 ‘사탄에게 속지 말자~~’ ‘사탄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다~~’라고 자주 언급하죠. 하지만 ‘사탄이 무엇인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사탄을 영적으로 검은색을 칠한 나쁜 놈~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많은 곳에서 사탄의 정체성을 소개합니다. 이렇게 사탄의 정체성을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탄에 대하여 꼭 알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탄에 속해 있는 우리의 옛 자아의 정체성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사탄이 쫓겨 났다~~ 라고 하지 않고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가 쫓겨 났다~~ 라고 쓴 이유도 사탄의 정체성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참소한다’라는 말은 ‘고소한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택받은 자들을 계속 고소하는 자의 정체가 사탄이며, 그것이 사탄의 정체성 중 하나라는 뜻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저 자들이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 합니다~~ 그러니 처벌하여 영원한 지옥으로 보내십시오~~’라고 고소합니다 .
이렇게 고소당한 우리는 원래 모두 지옥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10절 초반에 ‘구원자 예수님께서 복음을 들고 오셨다~~’라는 전제가 깔리면서 우리를 고소하던 자들이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피의자가 나에서 예수님으로 바뀌면서 고소 자체가 파괴가 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나 대신 피의자의 신분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 대신 벌(십자가)까지 받으셨죠. 하지만 예수님은 단 1 도 죄가 없으시죠. 그래서 부활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위를 의지하게 되면 우리는 또다시 우리의 행위 때문에 참소 당하게 되는 것이죠.
끝
'요한계시록(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계시록12:13-17(24.10.23.수) (2) | 2024.10.23 |
---|---|
요한계시록12:11-12(24.10.22.화) (2) | 2024.10.22 |
요한계시록12:6-9(24.10.18.금) (4) | 2024.10.18 |
요한계시록12:1-5(24.10.17.목) (2) | 2024.10.17 |
요한계시록11:14-19(24.10.16.수) (1) | 2024.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