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완료)

약3:3-12(22.04.14.목)

은혜바라기 2022. 4. 14. 08:44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말에 관한 묵상을 이어가겠습니다. 

 십계명에서도 '말'에 대한 경고가 있죠. “제 9 계명 이웃에게 거짓증거 하지 말라”입니다. 이 9계명은 단순히 ‘남들에게 거짓말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웃’이라는 조건을 단 이유가 바로 선택된 자들에게 전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 안의 본질인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대부분 그렇지 않고 문자적이 해석, 즉 인본주의 종교에서 가르치는 해석을 내어 놓죠. 이것을 '거짓증거'라고 지칭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봉사하고, 옷도 나누어 주고, 기부도 잘 하라는 것으로 해석해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다른 종교에서도 그렇게 안할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뭐가 다른 것이죠? 이것을 ‘말씀으로 거짓증거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묵상 1절에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신 것이죠. 목사들은 전부 거짓증거를 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오른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항상 '내가 전하고 내가 버려질까 두려워 한다' 는 식의 말을 했죠.)

 그래서 오늘 성경은 이 '말'에 대하여 더 깊게 가르치십니다.

 3절을 보죠. ‘말(짐승) 입에 재갈 채워 순종하게 하여 그 온 몸을 제어하다.’라고 표현이 되어 있죠. 이 말씀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예수님의 입은 하나님께서 순종이라는 명령으로 채워 지셔서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하며 제어되어 사역을 마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절을 보죠. ‘배의 작은 키가 사공의 뜻대로 운행한다’고 하죠. 즉,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이라는 배의 작은 키로 이 땅의 모든 인류 역사에 복음의 계획을 펼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5절을 보죠. 이처럼 혀가 큰 것, 즉 복음을 자랑하다고 합니다. 즉, 말씀으로 구원(큰 것)을 이룬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운다고도 표현되죠. 즉, 말씀이 심판의 역할을 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6절을 보죠. 이렇게 혀는 그 자체로 심판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자의 혀는 ‘지옥 불’의 출처를 가진 것으로도 표현됩니다. 

 7절-8절을 보죠. 이렇게 인본주의에 묶여 있는 혀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오직 악과 독만 가득하다고 나옵니다. 이렇게 혀는 말씀, 즉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창조된 만큼 매우 강력한 도구로 지음받은 창조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강력한 도구가 잘못된 방향인 인본주의에 묶여 버리면 도리어 매우 강력한 악이 된다는 것이죠. 

 9절에서 보면 이 혀로 하나님을 찬송하기도 하고 사람을 저주하기도 한다는 말씀을 하죠. 이것은 사람이 이 둘을 전부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이 촛점이 아닙니다. 그것을 10절에서 말씀하시죠.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나옵니다. 즉, 인간의 모든 설교는 전부 누룩섞인 설교라는 뜻입니다. 오직 참 복음은 예수님만이 하실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11-12절에서 다시 확인시켜 주시죠.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오직 ‘쓴 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열매는 다 잘못된 열매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단물과 선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보면 ‘짠 물에서 단 물을 내지 못한다’고 선언하시죠. 

 우리는 다 짠 물입니다. 죽은 자라는 뜻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자라는 뜻입니다. 사실 설교는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전부 입니다. 즉, ‘우리는 전부 죽은 자다. 끝’ 그리고 전부 다 예수님에 대한 설명만 하시는 것이죠. 

 

 오늘 묵상에서 나온 '혀'는 '혀바닥'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죠. 바로 '말'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말을 밖으로 내어 보내는 '나의 생각, 나의 기준'을 뜻합니다. 선악과 이전의 인간은 하나님의 기준(형상)대로 살고 있었죠. 즉, 나의 모든 생각의 기준이 바로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기준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악과 이후의 인간은 그런 삶을 버리고 인간의 기준으로 사는 것을 선택했죠. 그것을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스스로 이 기준에서 벗어나서 다시 하나님의 기준으로 순종하여 삶을 살 수 있는 인간은 단 1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홀로 하나님의 기준대로 '복음의 사역'에 순종하여 삶을 사시다가 인본주의 종교인들의 손에 죽으신 것입니다. 완벽한 인본주의와의 분리를 이루어 내신 것이죠. 

 

 인간이 어찌 어찌 노력하여 예수님과 거의 비슷하게 삶을 살고 예수님보다 더 비참하게 인류를 위해 죽는다고 해도 그것은 예수님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산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높은 인본주의 이상적 기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일평생 봉사를 하다가 열병으로 죽은 자의 삶이나 도시 속에서 평생 돈만 벌다가 죽은 자의 삶이나 가난한 자를 속이고 죽여서 재물을 뺏앗아 살다가 죽은 자의 삶이나 영적인 면에서는 모두 같은 삶입니다. 모두 나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의 방향에서 노력하는 것 뿐이죠. 그러나 인간은 아프리카 봉사자를 '선'으로 판단하고 남을 강도질하는 자를 '악'으로 판단하죠. 그 기준의 본질이 바로 '인본주의'입니다. 누가 더 의의 삶에 충실한가? 즉, 인간 스스로 선악을 기준하는 것, 즉 선악과 사건 ing(현재 진행형) 인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병사와 러시아 병사 중에 누가 더 나쁜 놈일까요? 이제 애매하시죠? 더 애매한 것을 말씀드려 볼까요? 우리 몸속으로 세균과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백혈구라는 우리 몸의 병사가 그 세균과 바이러스를 죽입니다. 그래서 백혈구는 우리에게 '선한 존재' 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조금 확장해서 '지구'의 기준으로 볼까요? 지구에 가장 강력한 세균과 바이러스는 바로 '인간'입니다. 지구를 파괴하는 유일한 짐승이 바로 인간이죠. 그래서 인간이 점점 더 많아지고 더 많은 개발행위를 할수록 지구는 망가지죠. 그런데 세균과 바이러스가 이런 인간을 공격하여 사람을 죽이고 인구를 감소시킵니다. 즉, 지구의 입장에서는 이 세균과 바이러스가 백혈구 역활이 되고 인간이 바이러스같은 존재가 되는것이죠. 이 이론은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어느 환경학자가 말한 것입니다. 재미있죠? 

 

 이 세상에서 가장 휼륭한 인격(인본주의 꼭대기에서 우러러 볼만한 사람)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바리새인의 시대를 꼭 집어서 오셨죠. 그리고 그들에게 '이 독사의 새끼들아~'라는 치명적인 욕을 하셨고 그들이 평소 가장 멀리하는 창녀, 죄인, 새리들과 식사를 함께 하며 지내셨습니다. 이것은 과연 무슨 기준일까요? 

 

 결론을 내죠. 오직 '선'은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악'은 전부 다 '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못하죠. 그런데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것을 알게 되는데 이것을 알게 된 자는 예수님의 신부이기 때문에 알려 준다는 것이 바로 복된 소식 '복음'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삶이 어떻게 될까요?  빙고~~ 오직 예수님만 소망하게 되는 것이 전부입니다. 

 

 사랑(=복음)이 가장 먼저 계획되었고 그것을 알게 되는 것(=믿음)이 과정이 죠. 그 결과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게(소망) 되죠. 그래서 복음은 사랑,믿음,소망이 전부 입니다. 그 중에 사랑(복음)이 제일인 것은 사랑(복음)이 제일 먼저 계획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이 모든 것의 출처가 되기 때문이지요. 

 

 

'야고보서(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4:1-3(22.04.18.월)  (0) 2022.04.18
약3:13-18(22.04.15.금)  (0) 2022.04.15
약3:1-2(22.04.13.수)  (0) 2022.04.13
약2:14-26(22.04.12.화)  (0) 2022.04.12
약2:10-13(22.04.11.월)  (0) 2022.04.11